다음의 내용은 2003년 4월 25일자 WSJ의 기사 일부를 한국말로 옮긴 것입니다.
원문 기사 링크: http://online.wsj.com/public/resources/documents/Polk_Groton_Grads.htm
그로튼 케이스: 좋은 성적만으로는 아이비 불합격
그로튼 스쿨(Groton School)은 명문 보딩이자 공부를 열심히 시키는 학교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학교다. 1998년에 그로튼을 졸업한 79명의 학생 중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34명이 아이비리그 대학교에 합격했다.
그러나 헨리 박은 아이비리그 합격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공부를 치열하게 하기로 유명한 그로튼 졸업생 중에서도 14번째로 내신 성적이 좋고, 당시 1600점 만점이던 SAT에서 1560점을 받았지만 4곳의 아이비리그 대학(하버드, 예일, 브라운, 콜럼비아)에서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박은 스탠포드와 MIT에서도 불합격했다.
박의 동급생 중에서 박이 떨어진 대학교에 붙은 다른 학생들의 성적은 박의 성적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학생들은 박이 가지지 못한 것들 - 돈, 끈, 소수 인종 지위 등을 이용해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너무 순진했다”는 박의 어머니는 “나는 대학에서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박의 부모는 한국에서 뉴저지로 이민을 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아들을 그로튼에 보냈다. 명문대에 많은 졸업생들을 합격시키는 그로튼의 명성 때문이었다.
조만간 연방 대법원은 미시건 대학에서 “소수 인종 차별 철폐 정책” 때문에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불합격 통지를 받은 백인 지원자들에 대한 판결을 내릴 것으로 기대된다. 이 판결은 향후 대학 입시에서 인종이 합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98년 그로튼 졸업생들의 사례를 보면 소수 인종 지위는 대학 입시에서 합격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사실 백인 학생들과 인종 때문에 특혜를 받는 학생들은 다른 측면에서도 이점을 누리고 있다.
박의 동급생 중 성적이 낮아도 명문 대학교에 합격한 학생들 중 일부는 유색 인종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낮은 성적을 갖고도 탑 스쿨에 진학한 학생들 중 일부는 백인 부유층 집안 출신 학생들이었고, 이른바 졸업생 가문(legacy) 특혜를 받았다. 실제로 막대한 기부금을 내고 입학 허가를 받거나, 유명인의 자녀도 있었다. 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낸 학생들이 최고 명문대에 뽑혀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학생들과 달리 박에게는 대학 측에서 흥미를 갖고 특별 대우를 해줄 만한 것들이 없었다. 명문 대학교에서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은 흑인, 히스패닉, 아메리카 원주민도 아니었기 때문에 인종으로 특혜를 받지도 못했다. 박의 부모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미국 명문 대학 졸업생도 아니었고, 대학에 기부를 할 정도의 재산도 없었다. 명문 대학교의 눈길을 잡아 끌 수 있는 다른 요소가 없는 학생들은 대입 시험 점수와 학교 성적을 올리는 방법밖에 없다. 이런 탑 스쿨들은 학생의 예술적 재능이나 리더십 능력 같은 주관적인 요소도 입학 결과에 반영한다. 그 결과 매년 학교에서 1등을 하고 SAT에서 만점을 받은 수많은 학생들이 엘리트 대학에서 불합격 통지를 받고 있다.
박은 “대학교에서 결과를 발표하고, 다른 친구들이 등록을 시작할 때, 난 속이 많이 상했다”며 “더 높은 점수를 받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브롱스에서 자라 그로튼에서 장학금을 받고 다녔던 라키아 워싱턴은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이다. 워싱턴은 졸업 성적이 60등에 SAT에서 1110점을 받았지만 콜럼비아에 합격했다. 워싱턴은 소수 인종 차별 철폐 정책 덕분에 굉장한 기회를 얻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동시에 “부모가 해당 학교 졸업생이거나 기부금을 내서 특혜를 받는 것도 결국 마찬가지다. 소수 인종 차별 철폐 정책에 대해서만 비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로튼은 학생들에게도 내신 등수를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WSJ이 그로튼의 대학 상담 부서에서 입수한 문서를 보면 1998년 졸업생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기입되어 있다. 학생들의 10학년부터 12학년 1학기까지의 내신 성적, 각종 대입 시험 점수, 그리고 대학 지원 및 입학 결과가 적혀 있다.
“그로튼 스쿨 1998년 졸업생: 학교 등수에 따른 대학 합격/불합격/대기자 명단” 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이 문서에 대해 그로튼은 “학교의 공식적인 기록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WSJ가 입수한 명단에 이름이 있는 그로튼 졸업생 20명은 각종 점수와 대학 입학 결과가 정확하다고 확인해주었다.
이 문서에 있는 다른 사례를 보자. 당시 그로튼 졸업생 중 9명이 스탠포드에 지원했는데, 단 1명만이 합격을 했다. 스탠포드에 합격한 마가렛 배스는 졸업 성적이 40등이다. SAT 점수는 1220점으로 그로튼에서 스탠포드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다른 학생들 중 7명이 배스보다 SAT 점수가 더 높다. 당시 스탠포드 합격생 중 90%가 출신 고등학교에서 상위 10% 안에 드는 학생들이었고, 75%의 SAT 점수가 1360점 이상이었다.
배스의 강점은 무엇이었을까? 배스의 아버지는 스탠포드 이사회 의장이었고, 1992년에 2,500만 달러를 학교에 기부했다. 배스의 아버지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했고, 부모가 모두 그로튼 재단 이사이다.
배스 가족의 고문 변호사이자 스탠포드 교직원인 마틴 런던은 그로튼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배스의 기록은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배스 가족과 친한 다른 사람은 문서에 적혀 있는 배스의 기록이 정확하다고 말했다. 런던은 배스가 스탠포드에서 우수한 학업 성적을 거두고 명예롭게 졸업했다고 덧붙였다. 배스는 WSJ가 몇 차례 질문을 요청했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그로튼에서 배스의 룸메이트였던 클레어 애버내시는 배스가 글을 잘 쓰기 때문에 대학 입학 에세이가 훌륭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 명문 대학교에서 해당 대학 졸업생과 기부자의 자녀들을 선호하는 것은, 대학 등록금만으로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학교들은 기부금으로 장학금을 주고, 교수들에게 급여를 주고, 다른 필요를 채울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유명 인사의 자녀들이 입학하면 대학의 위상이 올라간다. 스탠포드의 로빈 맴렛 입착처장은 “당연히 스탠포드에 크게 기부를 한 기록을 고려한다”며 “매년 지원자 중에서 막대한 액수를 기부한 사람들을 부모로 둔 학생들의 명단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배스가 98년 그로튼 졸업생 중에서 유별난 부모를 둔 유일한 학생은 아니었다. 졸업생 중에는 외교관, 국제 변호사, 유명한 작가, 부유층 자녀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버드는 1998년 그로튼 졸업생 중 십여 명을 신입생으로 받아들였다. 아이비리그 대학 중에서 하버드 합격자가 가장 많았다. 당시 하버드 합격생 중 5명 이상이 하버드 졸업생의 자녀였다. 이 중에는 보스턴 벤처 사업가인 크레이그 버르의 아들 매튜 버르의 이름도 있다. 하버드 기록에 따르면 크레이그 버르는 1990년대 중반에 100만 달러와 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매튜는 졸업 내신 성적이 4등으로 좋았으나 SAT 점수는 1240이었다. 당시 하버드 신입생 중 75%의 SAT 점수는 1380점 이상이었다. 매튜는 윌리엄스에도 지원했으나 불합격했다. SAT를 4번 봤다는 매튜는 “난 시험을 잘 보지 못한다”며 아버지 덕분에 하버드에 합격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난 집안의 도움으로 대학에 합격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경우는 일이 그렇게 되어 버렸다”고 매튜는 덧붙였다.
크레이드 버르는 “아들이 하버드에 합격한 것과 내가 하버드에 기부를 한 것은 절대로 아무 상관이 없다”며 “매튜는 내신 성적이 훌륭하기 때문에 내 도움이 전혀 필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버드는 개인의 입학 사실에 대해서는 알려줄 수 없다며 코멘트를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