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은 칼보다 강하다–토마스 페인의 “상식”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로부터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 받았다 … 인류는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정부를 조직했다 …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어떠한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이 인민의 권리이다.” (미국 독립선언문 중에서)
독립 전쟁, 처음부터 독립을 위한 전쟁?
천부인권, 권력에 대한 인민의 동의와 저항권 등 근대민주주의 핵심 정신을 줄줄이 담고 있는 미국 독립 선언문은 다시 봐도 명문이다. 이 독립 선언문은 1776년 제 3차 대륙회의 (Continental Congress)에 모인 식민지 각 주의 대표들에 의해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시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이미 1773년 보스톤 차 사건이 발생했고, 이듬해에는 식민지 대표들이 ‘참을 수 없는 법 (The Intolerable Acts)’의 철회를 요구하는 한편 대륙회의를 창설했으니 1776년에서야 독립 선언문이 채택되었다는 데서 발견되는 시간차이다. 게다가 독립선언문은 이미 1775년 렉싱턴-콩코드 전투를 필두로 식민지가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지 1년여가 흐른 시점에 나온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발견되는 “시차”는 사실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시차는 전쟁이 이미 시작 되었다 하나 여전히 식민지 내부에서는 전쟁의 명분이나 성격, 목적 등에 대해서는 상당한 이견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가령, 패트릭 헨리가 버지니아 의회에서 그 유명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1775년 4월)”로 끝맺는 연설을 했을 때 좌중은 여기저기서 “반역이다!”라는 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패트릭 헨리는 연단에서 내려와 곧장 영국 왕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으며,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대목도 전기작가의 날조라는 주장도 있다.) 영국 역시 초반에는 독립전쟁의 성격을 일종의 “반란”정도로 치부했었다.
독립전쟁 초반, 반영감정이 극에 달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력을 통한 저항을 불사하되 “독립”은 “반역”이라는 정서가 팽팽했던 데에는 많은 식민지인들에게 있어 영국은 “모국”이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독립 전쟁이 끝났을 무렵, 약 1/5정도의 미국인들이 여전히 왕당파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국인들 대다수가 “영국왕은 식민지 신민과의 계약을 파괴한 것이며 따라서 식민지 인민들은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합당하다”는 독립선언서의 정신으로 선회할 수 있었을까?
토마스 페인: 독립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
여기서 토마스 페인이 저술한 <상식 Common Sense>라는 한 권의 책을 지나칠 수 없다. 토마스 페인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지 고작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은 중졸의, 가난한 사내였다. 하지만 타고난 문장력과 논리력, 명민함, 게다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을 갖춘 그에게서 탄생한 매우 짧은 책 <상식>은 1776년 1월 10일, 출간 되자마자 미 대륙을 뜨겁게 달구어 15만부가 판매되는 기염을 토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상식>을 통해 페인은 정부의 기원과 그 목적에 대한 원리, 그리고 정부의 폭정에 대해 반항할 권리와 독립을 달성할 수 있는 미국의 잠재성 등을 이야기한다. 영국에 대한 저항이 단순한 과세 저항을 넘어선 완전하고 자주적인 “독립”이어야 함을 논증한 것이다. 사실상 독립 선언문의 논증구조 역시 <상식>의 그것에서 어긋나지 않는 셈이다. 이 책의 제목이 <상식>인 까닭 역시 간단명료하다. “나는 간단한 사실과 명백한 논거, 상식 이상의 것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처음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미래 <건국의 아버지들> 조차 독립혁명의 당위성에 대해 유보적이었다. 하지만 상식적인, 너무나 상식적인 이 책은 점차 미국인들의 마음을 얻었고, 출간 후 반년이 흘렀을 때에는 독립 선언문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진부하디 진부한 클리셰지만 역시, 펜은 칼보다 강했다.
페인은, 미국의 독립후 독립 혁명의 지도자들 상당수가 미국 독립 후에는 대중의 권력 획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프랑스 혁명을 반대하고 기득권층의 한계를 드러냈던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를 취한다. 가난이나 문맹 같은 유럽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귀족층의 권리를 제한하고 누진적 소득세를 통해 일종의 복지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다소 급진적인 주장도 그의 저술에는 담겨있었다. 그렇기에 미국의 독립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혁명도 일종의 <상식>이었다.
U.S. History Key Words
대륙회의 : 1774년 발족된 식민지 13개 주의 대표자 회의로 각 식민지간의 연락 기구로 시작하였으나 독립전쟁 당시 외교, 군사, 재정 문제에서의 식민지 각 주의 연대행동을 위한 일종의 중앙정부 역할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