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 속의 판결들, 시대정신을 이해하는 키워드 (1)
SAT II 건 AP건 미국사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라면 역사 속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각종 판결을 꼼꼼히 정리해두면 큰 도움이 된다. 사실 시험과 상관 없이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판결들은 각 시기의 시대정신을, 혹은 역사적 흐름의 분기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기에 중요하기도 하다. 그런데 조금 더 꼼꼼히 들여다보면 흥미롭게도 재판에서의 승자와 궁극적인 승자가 엇갈리는 판결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 몇 가지만 소개해 본다.
Marbury v. Madison: 연방주의자 마셜 대법관의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1,2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과 그 뒤를 이은 존 애덤스의 시대는 일명 “연방파 (Federalist)”들이 행정부의 요직과 입법, 사법부를 전부 장악한 연방파의 시대였다. 그러나 존 애덤스 정권을 거치면서 연방파 행정부의 세력은 점차 약해졌고, 결국 공화파였던 제퍼슨이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어쨌거나 제퍼슨이 취임하기 직전에 애덤스 대통령이 한 일은 “한밤의 임명.” 성급히 연방파 인사들로 사법부의 요직을 채운 한밤의 임명은 이미 행정부와 입법부는 사실 제퍼슨의 공화파에게 기울어진 상황에서 사법부를 장악하고자 했던 연방파의 무리수였다. 오밤중에 성급히 임명한 인사조치인지라, 새 대통령인 제퍼슨이 취임할 때까지 임명장을 받지도 못한 말버리 (Marbury) 같은 인물들도 있었다. “한밤의 임명”에서 애덤스대통령은 말버리를 워싱턴 D.C. 의 치안 판사로 임명했지만, 제퍼슨의 취임식까지 애덤스의 서명날인이 된 임명장은 말버리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제퍼슨 행정부의 국무장관에 취임한 매디슨이 임명장 전달을 거부했다. 이에 말버리는 대법원장 존 마셜에게 “매디슨으로 하여금 임명장을 전달하도록” 법원이 강제해 줄 것을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던 것. 매디슨이 애초에 말버리의 임명장 전달을 거부했던 것은 연방파와의 당시의 권력지형상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이다. 역시 연방파였던 대법원장 마셜이 말버리가 아니라 매디슨의 손을 들어준 것. (재판 결과만 놓고 보면 의외일수도 있다). 말버리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적 근거로 삼은 것은 1789년의 법원 조직법으로 이 법에는 연방 법원이 임명장 전달과 같은 문제에 대해 행정부에 행정 조처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마셜 대법원장은, 헌법에서 이미 법원의 역할과 권한에 대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이와 별도로 말버리가 근거하고 있는 1789년의 법원조직법을 통과 시켰을 때, 입법부는 이미 연방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범위를 벗어나 일종의 월권 행위를 했으며, 따라서 1789년의 법원 조직법은 무효라고 판단한 것이다.
얼핏 보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임명된 연방파의 사법부 인사들에 대한 임명장 전달을 거부함으로써 연방파를 견제하려했던 공화파 매디슨의 승리인 이 판결의 진정한 승자는 마셜 대법원장이었다. 판결은 “법원이 행정부에게 특정 조처를 강제할 권한”을 포기함으로써, 입법부 혹은 행정부의 행위에 대해 “법원이 연방 의회가 승인한 법률을 무효화할수 있는 권한”을 확립시키는 계기가 된다. 즉 이 판결의 최후 승자는 연방파였던 마셜 대법원장이었던 것.
원숭이 재판: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다? 판결이 가져온 의외의 귀결
비교적 최근에 지적 설계론을 공립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느냐의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과 재판에서 알 수 있듯, 공교육에서의 창조론과 진화론은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주제다. 그 시초는 일명 “원숭이 재판.”
1925년, 당시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던 테네시 주의회가 주의 예산 지원을 받는 공립학교들에서 진화론 교육 금지와 성경을 글자 그대로 가르칠 것을 강제하는 일명 ‘버틀러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인구 1700명 정도의 작은 타운 데이턴에서 당시 24세였던 고등학교 생물학 교사 존 스콥스가 학생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이 재판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대서 특필되었다. 물론 보수적인 성향의 지역 정서 덕에 스콥스는 재판에서 패했고 10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그런데 재판의 전 과정이 집중조명을 받게 되면서 판결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결과들이 발생했다. 가령, 창조론자 측이 내세운 증인조차도 법정에서 하나님의 24시간이 실제로는 수 십만년일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자기 모순, 혹은 버틀러법의 위반을 범하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재판 과정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 근본주의에 회의를 느끼면서 결과적으로는 근본주의 개신교로부터 이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버틀러법은 1968년이 되어서야 폐지되었다.
확실히 역사에서도 이기고도 지는 싸움이 있나 보다. 물론 마셜의 판결과 테네시주의 원숭이재판에서의 판결은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판결과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판결이라는 상당한 차이를 가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