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밖 역사 읽기 (3) : 영화로 보는 미국사

by help posted Feb 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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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 역사 읽기 (3) : 영화로 보는 미국사

 

그다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으로 알았는데, 맥락만 조금만 잡아줘도 역사 점수가 확 오르는 친구들이 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 중 한 때 케이블 티브이 히스토리 채널을 끼고 살았노라 말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표본집단이 작지만 그런 학생들이 히스토리 채널을 보게되는 동기, 가령 역사에 대한 막연한 흥미가 화면이 전하는 시청각 정보가 결합하여 인지 작용에 긍정적인 기능을 했으리란 추측을 해본다. 


책 읽기가 지루할 때쯤 영화보기를 권하는 이유다. 사실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났던 사건, 혹은 상황을 모티프로 하고 있는 영화들은, 설령 등장 인물과 주요 사건이 허구라해도,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스타일이 아니라 해도, 우리가 미지의 시대를 그려보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영화를 그저 영화로 볼 때와 영화와 배경이 되는 시대를 연관지어 볼 때 그 맛은 다르지 않을까? 거리가 더운 여름 날, 자녀들과 함께 미국 역사 얘기하면서 즐기기 좋은 영화 몇 편 소개한다. 

크루서블 (Crucible, 1996. 감독: Nicholas Hytner) 


지난 주 칼럼에서 소개했다시피 아서 밀러 원작의 크루서블은 1692년 세일럼의 마녀 재판을 소재로 매카시즘의 본질에 대해 고발하는 희곡인데, 1996년 영화화 되었다. 원작의 분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을 더 권한다. 또 당시 뉴잉글랜드의 성장, 경제적 변화, 퍼트남 가와 포터가의 갈등 등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이 영화는 훨씬 재미있게 보여질 것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1939. 감독: Victor Fleming) 


너무나 유명한 마가렛 미첼의 동명 소설에서 나온 영화. 대작이라서 (시간상) 지루하게 보여질 수도 있고 그 스케일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주인공에 몰입을 하다보면 잃어버린 남부의 자존심, 귀족문화, 가문을 복구해가는 강인한 여성에게만 박수를 보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 (책)는 철저하게 “남부인,” 정확히 말해 남북 전쟁 이전 기득권을 누렸던 극소수 백인의 시선에 충실하다. 노예의 경험이 어찌되었건, 노예 소유주들은 (북부의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과는 달리) 노예와 공존하며 노예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남부의 과거 엘리트들에게 북부의 재건 정부는 그저 부패하고 타락한, 복수심에 불타는 “남부 파괴자들”이었을 것이다. 물론 시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영화 보기 전에 조금이라도 남북 전쟁과 재건시대에 관한 참고 문헌을 들여다보면 작품이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천사의 투쟁 (Iron Jawed Angels, 2004. 감독: Katja von Garnier) 


1869년 당시 준주 (territory)였던 와요밍이 미국 최초로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했다. 19세기 후반 어떤 이들은 “평등”을 강조하며, 혹은 어떤 이들은 다소 인종주의적인 동기로 (흑인과 이민자 남성에게 있는 투표권이 백인 여성에게 없다!) 참정권을 주장했고, 여성 참정권 운동이 성장했다. 그러나 1910년 여성이 투표권을 획득한 주는 여전히 드물었다.


HBO에서 제작한 이 영화는 향후 전미 여성당 (National Women’s Party)을 만들게되는 “과격한” 여성 참정권 운동가 앨리스 폴 등이 어떤 활동으로 여성 참정권을 획득하게되는지 1913년 윌슨의 대통령 취임 연설일의 퍼레이드부터 1920년 수정헌법 19조의 통과까지 따라가는 작품이다. 윌슨 대통령, 1차 대전, 백악관 앞 시위, 감옥의 단식 투쟁, 전세대 참정권 운동가인 캐리 캣 등 다양한 역사정보가 있지만 지루한 느낌은 없는 영화다. 주인공 앨리스 폴을 편애한다는 느낌이 좀 강하다는 것이 단점이면 단점이랄까. 여성 참정권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꼭 권하고 싶은 영화다.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1940. 감독: John Ford ) 


존 스타인벡 원작의 <분노의 포도>가 그대로 영화에 옮겨갔다. 개인적으로 대공황과 뉴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꼭 한번 보기를 권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대공황이 할퀴고 간 오클라호마, 1930년대 중서부를 강타한 모래바람 (Dust Bowl), 은행으로부터 차압당한 재산, 그 모든 불운을 겪은 “조드 일가”로 상징되는 소농민의 시선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한편 이들이 캘리포니아에서 겪게 되는 일은 사실상 뉴딜의 일부였던 농업 조정법 (AAA: Agricultural Adjustment Act)의 이면이다. 농산물 가격의 급락을 막기 위해 생산을 억제하고, 이를 따르는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했던 AAA는 어떤 점에서 농산물의 “과잉 생산과 시장”이라는 문제는 꿰뚫어보고 있었지만,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소작농들에게는 혜택이 되지 못한다. 그들의 삶의 애환은 시장의 논리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는 점을 어렴풋이나마 알려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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