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의 숨겨진 역사, 하버드의 드러난 역사 (2)

by help posted Feb 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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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의 숨겨진 역사, 하버드의 드러난 역사 (2)

 

철도, 오일, 철강, 전기로 대표되는 19세기 2차 산업혁명은 과학 기술의 발전과 분리 불가능하다. 따라서 19세기 후반 기업들은 자체 연구소 혹은 대학을 통해 과학활동을 금전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국민의 세금으로, 정부가” 과학 활동을 지원하는 형태의 과학 연구는 2차대전 무렵 혹은 그 이후에 정착된 것인만큼,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대학이 지역의 부호 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후원에 크게 의존하기 시작했다. 또한 기업이 후원을 통해 대학에 영향력을 키웠다는 것은 어디서나 흔한 일이다. 

그런데,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에서 고발한 “모건과 록펠러 가문은 19세기 말 각각 하버드에 천문학적인 기금을 기부, 경쟁적으로 하버드를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이를 통해 하버드에 대한 영향력을 늘렸다”고 말하고 있는 대목은 예사로 스쳐갈 수 없다. <하버드는 어떻게 지배하는가How Harvard Rules: Reason in the Service of Empire>가 지적하듯, 하버드가 “미 지배계급을 위한 봉사기관”으로서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보이기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향력’은 하버드 법인에 포진한 인맥과도 때로 일맥 상통한다. 즉,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는 하버드의 구심점이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하버드 법인 이사회이며, 그 이사회가 철저하게 자신들이 속한 기업과 계급의 이해관계에만 충실한 극소수 거대 자본의 전, 현직 중역과 기업 변호사들에게 장악되어 있는 상황에서, 학문 연구는 어디까지나 “중립적”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답변으로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이 언급하고 있는 한 사례가 한때 미국 7대 기업에 속해 있었으며, 혁신의 대명사였던 에너지 회사 엔론이 파산한 2001년 엔론사태다. 아마 엔론 사태는 아직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경제 스캔들일 것이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전재산을 잃었으며, 엔론 스캔들은 시장에 대한 신뢰가 총체적으로 망가지게 된 (폴 크루그먼) 사건이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알려진 진실. 그런데 파산 직전 하버드 매니지먼트사는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처분함으로써 엄청난 피해를 모면했다. 감추어진 진실이며, 흥미롭게도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그뿐일까? 엔론의 파산 이전 하버드의 학자들과 엔론은 끈끈한 커넥션을 가져왔고, 하버드의 최고의 학자들은 엔론에 호의적인 각종 정책 및 연구 결과들을 쏟아냈다. 이는 엔론이 하버드에게 쏟아부었던 천문학적 연구비와 연구 설비의 댓가로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업과 학교의 “끈끈한” 커넥션 하에서 “당연한” 그렇지만 “잘 언급되지 않은 진실”일 것이다. 

엔론 사태에 등장하는 하버드 매니지먼트사는 역시 대학들의 신자유주의화를 앞장서서 견인한 하버드가 1970년대에 설립한 자산운용회사로, 미국 대학 중 가장 많은 기금을 보유한 하버드의 기금 운용만을 전문적으로 담당한다. (명문대들은 보유한 기금도 어마어마하지만 그 자산을 불리기 위한 투자 액수도 상상을 초월한다) 보통 대학기금의 관리라고 하면 안전한 자산 관리를 생각하겠지만, 하버드 매니지먼트사의 신자유주의적 자산 운용을 들여다보면 왜 하버드가 <도서관을 갖춘 헤지펀드>라는 제목이 절로 이해가 간다. 

여기에 또 다른 “감추어진 진실”이 등장한다. 하버드 매니지먼트사는 교육기관 즉 “비영리”기관으로 세금을 걱정하지도 않는 면세 혜택을 레버리지 삼아 각종 금융 파생상품에 투자, 결국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과도한 공격적 투기로 인한 현금난을 겪었고, 투자 손실액도 기금의 30%에 달할 정도에 이른다. 금융 위기 이전, 하버드 매니지먼트사의 (하버드 출신) 펀드매니저들은 하버드의 교수들과 비교해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연봉을 받아왔고, 그들이 불려주는 하버드 자산은 천문학적 연봉의 정당화 기제였다. 그러나 하버드가 현금 운용 및 자산 손실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하버드 매니지먼트사의 펀드매니저 (월가의 그들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책임을 지지 못했다.

손실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대학 구성원들, 특히 임금 사다리의 가장 아래에 있던 노동자들의 해고 혹은 권고 퇴직, 임금 삭감, 동결 등으로 이어졌다. 사실 2009년 무렵 하버드의 대량 해고 사태는 알고 있었으나, 그 원인은 그저 “금융 위기”였다. 마찬가지로 올스톤에서 하버드가 중단한 각종 개발 프로젝트와 그로 인해 올스톤이 떠안았던 피해에 대해서도 “금융 위기”때문에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금융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이, 세계에서 최고로 똑똑한 브레인들의 무책임한 탐욕이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난 백 여년 동안, 기업에 대한 대학의 의존은 이제 대학을 기업으로 만들었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은 사실 따지고 보면 하버드만의 진실이라기보다는 하버드를 롤 모델 삼아 신자유주의의 첨병이 되어버린 많은 명문대학들의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학생들의 입학 과정을 도와주게 될 때, 소위 명문대에 지원하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에게는 “배워서 남 줘야 한다 (홍익인간!)”고 덕담을 하곤 했었다. 그/녀들이 합격 소식을 전하는 날, 이 책도 꼭 권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