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법절차 (Due Process)

by help posted Feb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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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법절차 (Due Process)

 

12인의 성난 사람들 

 

법정 영화이긴한데 한 사람의 명석하고도 정의로운 변호사가 기존의 판결을 통쾌하게 뒤집는 박진감 넘치는 그런 클리셰와는 전혀 다른 법정 영화가 있다.  시드니 러미트 감독의 12 Angry Men (1957). (참고로 이 영화의 원작인 레지널드 로즈의 극본을 영어시간에 읽는 학교도 상당히 많다.) 

 

짜증날 정도로 푹푹 찌는 더운 여름 날, 달랑 선풍기 하나 돌아가는 뉴욕 소재 법원의 한 방에 12인의 배심원이 모였다. 이들이 모인 목적은 자신의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음에 이르게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슬럼 거주 라틴 아메리카계 19세 소년의 살인죄 유죄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배심원 만장일치로 유죄가 확정되면 소년에게는 사형이 선고될 터였다.  

 

96분의 상영시간 중 3분을 제외한 모든 장면은 탁자 하나에 열 두 명의 사람이 들어가면 거의 꽉 차는 듯한 배심원실이 배경이다. 열 두명의 배심원 중 열 한명은 소년의 유죄를 확신했으나 단 한명은 무죄를 확신한다. 재판을 빨리 종결짓기를 바랬던 나머지 배심원들은 그 한명의 판단을 “유죄”로 바꾸기를 종용했다. 그러나 영화의 말미 설득당하게 되는 것은 애초에 다수였던, 유죄를 확신하던 배심원들이다.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스포일러는 여기서 멈춘다. 다만 이 영화는 법정에서 “합리적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증거”가 입증되어야 “유죄”라고 하는 원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 시켜준다. 그리고 개인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편견과 사려깊지 못한 판단이 합리적인 판단을 방해할 수 있다는 교훈과 함께. 

 

미란다 판결 

 

지금으로부터 약 반세기 전인 1966년 여름, 미국 대법원은 사법 역사상 가장 중요한 판결 중 하나인 Miranda v. Arizona에 대한 판결을 내 놓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사 기관이 피의자를 체포하면서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진술한 것은 모두 법정에서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으며,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고…”라고 이야기하는 미란다 고지의 원칙에서 이야기하는 미란다가 Miranda v. Arizona판결에서 유래했다. 

 

미란다 판결은 “누구라도, … 어떠한 형사 사건에 있어서도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을 강요당하지 아니하며….” 라고 못박은 수정 헌법 5조에 입각한 피의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적법한 절차 (Due Process)에 관한한 가장 중요한 판결이다. 

 

미란다 판결이 나오기 3년 전 대법원장 얼 워렌이 이끌던 미국 대법원은 Gideon v. Wainwright (1963)판결을 내놓았다. 미국 시민의 헌법적 정의와 시민으로서의 권리에 대해 언급한 수정 헌법 14조와 “모든 형사절차에서 피고인은 죄를 범한 주와 특별구의 공평한 배심원단에 의한 신속하고 공개적인 재판을 받을 권리를 향유한다”고 한 6조에 입각하여, 피의자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금전적인 능력이 없을 경우에는 국선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이듬해 내려진 Escobedo v. Illinois (1964) 판결은, 범죄 피의자가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부터 기드온 판결에서 확립된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판결했다. 

 

바로 그 시기. 1963년, 멕시코계 미국 시민이었던 당시 21세의 가난한 청년 에르네스토 미란다가 강간 및 성폭행 혐의로 아리조나 피닉스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미란다는 변호사를 채 선임하기도 전인, 조사가 시작된 지 두 시간만에 경찰은 미란다가 범죄사실을 구두로 자백한 자술서를 바탕으로 미란다를 기소했다. 문제는 얼마 후 미란다가 자신의 자백을 번복하고, 경찰의 강요에 의해 진술한 자백은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고 반발하면서부터다.  아리조나 법원에서는 미란다의 유죄를 다시 한번 확정, 각각 20년과 30년 형을 선고하였으나, 연방 대법원에서는 미란다가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혹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 등을 고지받지 못한 상태에서 범죄를 자백했기 때문에, 그의 진술은 기소에 사용될 수 없다고 판단, 미란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미란다 본인은 목격자의 진술등의 증거에 의해 다시 기소되어 유죄가 확정되었고 10년을 복역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 대구 여대생 살인사건을 마주하며 

 

용의자를 체포할 때 범죄 용의자에게 미란다 권리를 읽어주어야 한다는 절차 자체는 이제 당연한 것이 되었으나, 사실 이 판결은 두고 두고 논란을 가져온다. 과연 흉악범의 “피의자로서의 권리”는 대체 어디까지 인정해야할까?  가령 강간, 살해, 시신 유기와 같은 흉악한 범죄의 상황에서, 이미 자백한 피의자가 “미란다 원칙을 고지받지 못했으며 강요에 의한 자백이었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는 상황을 정서적으로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할 것은 용의자 혹은 피의자가 반드시 범죄자로 단정할 수 없다는 사실. 

 

그 점에서 한국에서 벌어진 대구 여대생 납치사건과 관련된 해프닝은 시사점이 많다 .사건에서 술에 취한 여대생을 택시에 태웠고, 사건의 진범을 남자친구인 줄 오해하여 택시에 태웠던 택시 운전기사는 증거도 없이 6시간 동안 수갑을 찬 채로 “유력한 용의자로서” 조사를 받았다. 만약 그의 기억이 불충분하여 진범을 태운 것을 기억하지 않았거나, CCTV가 나오지 않았다면… 그러다가 강요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했다면… 아마 그는 국민들의 공분을 사는 흉악범으로 기억되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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