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뷰: 펜타곤 페이퍼의 추억

by help posted Feb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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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뷰: 펜타곤 페이퍼의 추억

 

“나는 반역자도 아니고 영웅도 아닌, 미국인이다.” 

 

며칠 전 NSA (National Security Agency, 미국 국가 안보국)가 버라이존의 모든 통화기록을 수집하는 감청 프로그램 프리즘 (Prism)을 가동해왔다는 뉴스를 읽었을 때, “설마, 이건 정치적 음해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맙소사! 버라이존 통화내역 감청이 전부가 아니란다. NSA는 프리즘을 통해 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들이 접속하는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IT 업체의 서버상에 저장된 사용자들의 인터넷, 이메일 사용 기록 등을 수집해왔다는 폭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순간에도 뉴스는 업데이트되고 있다. NSA는 2009년 이후 줄곧 중국 군을 해킹해왔다고 한다  그간 미국은 중국에게 미국 방위산업 등의 기업 비밀을 유출하는 사이버 해킹을 중단하라고 요청해왔고, 최근의 오바마-시진핑 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된 탓에, 미국의 입장은 여간 곤란한 상황이 아닐게다. 

 

이 놀라운 폭로의 장본인은 전직 CIA요원으로  NSA의 협력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던  IT 기술 전문가 에드워드 스노우든 (Edward Snowden). 기밀 문서를 복사한 후 휴가를 가장하여 홍콩으로 은신한 후, 홍콩에서 영국 가디언지의 기자를 만나 프리즘에 관한 충격적 진실을 폭로했다. 보도들에 따르면 스노우든은 “민간 정보망을 도청, 감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위선을 고발하고 싶었다”고 한다. 한편 그는 “내가 말하는 행동과 말 모두가 기록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도 그런 세상을 지지하고 싶지도 않다”고도 밝혔다.

 

공익을 위하여 자신이 몸 담고 있던 조직의 비리나 부패등을 외부에 알리는 (이라고 쓰고 폭로하는 이라고 읽는) 사람을 내부고발자 (Whistle Blower)라고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내부고발자는 “사회정의를 바로 잡는데 기여하고 스스로를 희생하는”영웅일 수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 내부 고발자에 대한 “내부”의 시선은 배신자라는 낙인이다. 현재 스노든은 그가 일하던 컨설팅 업체에서는 기밀 폭로 및 직업윤리 위반으로 해고된 상태이며, 많은 미국인들은 그를 “매국노”라 부른다. 미국에 송환될 경우 반역죄로 평생 감옥에서 썩게 될 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의 나이 이제 스물 아홉이란다. 

 

당연히 스노우든은 자신의 행위가 어떻게 해석될 지 정도는 예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난 반역자도 영웅도 아닌 한 명의 미국인일 뿐이다. 표현의 자유를 믿으며, 선의에 따라 행동했다.” 

 

펜타곤 페이퍼와 수정헌법 제 1조 

 

스노우든의 폭로와 관련된 뉴스를 접하면서 3년전 위키리크스를 통해 이라크전의 추악한 속살을 포함한 70만건의 미국방부 기밀 문서를 폭로한 브래들리 매닝을, 그리고 그에 앞서 40여 년 전 뉴욕타임즈가 국방부 극비 문서였던 <펜타곤 페이퍼 Pentagon Papers>를 유출하여 베트남전의 진실을 폭로했던 대니얼 엘스버그를 떠올린 사람은 숱하게 많을 것이다. 

 

1971년 6월 13일, 뉴욕타임즈에 실리기 시작한 <펜타곤 페이퍼>의 제목은 “미국이 베트남전 참전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숨은 이야기들”이었다. 언젠가 이 칼럼을 통해서도 간략히 소개한 적이 있지만, 엘스버그가 폭로시킨 펜타곤 페이퍼는 미국의 베트남 개입은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트루먼 대통령때부터 시작하였다는 점과, 또한 미국이 어떻게 제네바 협약을 거부하고 자체 정부를 수립한 남베트남의 응고 딘 지엠 정권을 지원했으며 추후에는 CIA 의 지엠 암살 계획을 묵인하였는지를, 또한 북베트남으로 물자를 수송하는 “호치민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서 라오스를 폭격했던 “비밀 전쟁”에 대한 이야기 등을 담고 있었다.

 

펜타곤 페이퍼에서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었던 내용은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강화하게 (혹은 확전) 되는 계기가 되는 통킨만 사건의 조작이다. 통킨만 사건은 1964년 북베트남이 미 해군의 전함 USS 매덕스호와 USS 터너 조이에 어뢰정을 이용해 선제공격한 사건이다. 며칠 뒤 미국은 북베트남에 의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보복” 목적의 폭격을 감행했다. 이후 의회가 통킨만 결의안 (The Gulf of Tonkin Resolution)을 통과 시켜,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군사적 행동에 대한 권한을 승인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실제 어뢰정 공격은 없었고 실제로는 당시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이 미군의 베트남전 개입에 대한 지지여론을 확보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었다. 

 

국방부 산하 브레인 탱크인 랜드 연구소의 상임 연구원이었던 대니얼 앨스버그의 폭로는 미국내 베트남전의 반전 여론을 더욱 강화시켰다. 당시 닉슨 행정부는 “국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펜타곤 페이퍼를 개제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같은 해 6월 30일 연방 대법원 판결에서 6:3으로 패했다(New York Times Co. v. United States, 1971). 사법부의 판단은 펜타곤 페이퍼를 개제하는 것이 수정헌법 1조에서 명시한 “언론, 출판의 자유” 영역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데자뷰… 

2013년 6월, 믿기 힘든 일이 폭로 되었지만 그 믿기 힘든 사건의 내부고발 “배경”은 어쩐지 낯이 익다. 엘스버그의 폭로가 베트남전의 무리한 개입에서 비롯되었다면, 이번 스노우든의 폭로는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실체가 불명한 적을 막기 위해 구축한 빅브라더 시스템의 역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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