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라는 부메랑: 존 에드거 후버

by help posted Feb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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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라는 부메랑: 존 에드거 후버

 

미국사에 거의 문외한인 사람도 마피아 보스 알 카포네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금주법이 시행되었던 1920년대, 대도시 뒷골목의 밤은 경찰력이 미치지 못하는 조직 범죄의 전성기였다. 

 

역시 미국사를 전혀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매카시즘이 뭔지는 안다. 1950년대, 2차 대전 직후 냉전 체제로 편입되면서 “국무부에만도 200명이 넘는 소비에트 스파이가 잠입해있다”는 매카시 상원의원의 주장이 대대적인 “빨갱이 사냥,” 이른바 매카시 광풍으로 이어졌다. 

 

미국사를 어렴풋이라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1960년대와 70년대가 흑인 민권 운동과, 베트남전 반대 운동과, 학생운동, 여성 및 마이너리티 운동 등 사회 변혁 운동이 불탔던 역동적인 세월이었음을 안다. 

 

위에서 열거한 약 반 세기 미국 대통령직은 캘빈 쿨리지 (공화당, 1923~1928 재임)에서 허버트 후버 (공화당, 1929~1932 재임)로, 다시 후버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민주당, 1933~1945 재임)로, 루즈벨트의 사망이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해리 트루먼 (민주당, 1945~1952 재임)과 그 뒤를 이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공화당, 1953~1960 재임), 그리고 존 F. 케네디 (민주당, 1961~1963 재임)와 암살된 케네디의 대통령직을 승계한후 68년까지 재임 한 린든 B. 존슨 (민주당, 1963~1968 재임) 이후 리처드 닉슨 (공화당, 1969~1973 재임)의 임기 전반부에 이르기까지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다시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오갔다. 그런데 1924년부터 1970년까지 연방 수사국 (FBI)의 수장은 줄곧 존 에드거 후버 한 사람이었다. 

 

FBI가 법무부 산하 소규모 특별 수사국으로 창설된 것은 1908년이니, 지금까지 100년 남짓한 FBI의 역사 거의 절반동안 FBI의 수장이었으니, 후버 스스로가 FBI 역사라 하겠다. 연방 수사국이 아직 법무부 산하 소규모 특별 수사국으로 존재하던 시절 국장 자리에 오른 후버는 1928년 경부터 대대적인 조직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고 요원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특별 수사국의 수사력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었고, 1935년 FBI가 정식으로 창설되었다. 

 

2차대전 무렵부터 FBI는 스파이 검거의 명분으로 첩보활동을 보다 활발히 벌이기 시작했다. 점차 FBI가 비공개적으로 독점하는 정보는 권력이 되어갔고, 정보 수집을 위해서는 도청이라든가 미행과 같은 불법적인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그 권력의 정점에 후버 국장이 있었다. 

 

반공 히스테리가 지배했던1950년대, 매카시즘의 진정한 주인공은 매카시 상원의원이 아니라 대대적 사찰을 통한 반공활동에 매진한 후버국장이었을 지도 모른다. 후버 국장은 영화배우 챨리 채플린에 대한 방대한 사찰자료를 작성했고, 이후 채플린은 공산주의자라는 낙인 때문에 영국으로 망명 후 미국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헬렌 켈러도 후버 국장이 “사상 요주의” 인물로 감시한 대상이었다.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힌 극작가 아서 밀러와 한때 부부였던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 역시 수년 간 FBI의 사찰 대상이었다. 후버가 이끈 FBI는무려 20여 년간 도청, 우편물 검열 등 불법적인 방법을 총 동원해 아인슈타인을 사찰하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이 소련(에 원자폭탄의 비밀을 제공한) 스파이로 몰린 로젠버그 부부 구명 운동이라든가 반핵 운동 등에 활발히 앞장섰기 때문일 것이다.

 

2차 대전 종전을 가져온 원자폭탄개발 프로젝트인 맨하탄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한때는 국민 과학자였던 핵물리학자 오펜하이머가 사상 검증 청문회에 불려나왔다. 오펜하이머는 한번도 공산당에 정식으로 입당한 적은 없지만, 그의 아버지로부터 상속 받은 막대한 부를 반파시즘 및 좌파 활동에 기부했으며, 오펜하이머의 주변에 친동생, 애인, 아내, 제자들 등이 직간접적으로 공산주의 활동에 관련되어 있다는 이유였다. 이러한 사실은 오랫동안 오펜하이머를 불법적으로 감시해왔던 FBI의 정보활동으로 얻어낸 것이었으리. 

 

후버시절 FBI의 반공활동의 표적은 1960년대 들어 민권 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등에게로 옮겨간다. 반전 운동가들도 언제나 후버의 표적이었다. 후버가 판단하기에 미국에 위험한 인물들은 어쨌거나 사찰의 대상이었다. 

 

후버 국장에게는 (알 카포네와 다른 의미에서) 밤의 대통령이라는 닉네임이 있었다. 그가 공권력을 이용(이라고 쓰고 남용이라고 읽는다)하여 은밀히 취득하고 수집한 정보들이 때로는 미국의 공식적인 최고 권력자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권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후버를 해임하려 할 때마다 루즈벨트의 여성 스캔들 혹은 엘레노어 루즈벨트의 동성애 스캔들과 같은 “사생활” 정보는 후버의 강력한 거래 무기가 되었다. 후버는 FBI 국장직의 유임을 약속 받는 대신, 루즈벨트가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른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때로 후버 국장은 대통령들에게 자신이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를 일부러 “흘렸다.” 정보의 누수로부터 대통령을 보호해줄 수 있는 존재임을 드러냄으로써 조용히 대통령들을 압박했던 것. 

 

그런데 사실 후버가 가진 정보 수집 능력 덕에 후버의 권력을 묵인해야했던 대통령들이야말로 사실 후버 국장에게 그들의 정적에 대한 불법 도청과 정보활동을 “주문”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리고 후버의 권력은 누구보다 강하지만 만인에게 비난받는 그의 외로움과 샴 쌍둥이였을지도. 최근의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을 지켜보면서 후버 국장이 생각났다. 과도한 권력의지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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