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들리 매닝 그리고 간첩법 (Espionage Acts)

by help posted Feb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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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들리 매닝 그리고 간첩법 (Espionage Acts)

 

지난 학기 필자와 함께 AP 미국사 공부를 했던 한 학생과 요즘 “오늘 아침의 <그 뉴스>는 20년, 혹은 30년 후 미국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역사적 사건>이 될까?”라는 대화를 가끔 나눈다.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령 내게 2011년 일본 후쿠시마의 원전사고는 1986년 체르노빌 사건 당시의 개인적 (초딩적!) 기억과 2차 대전 당시 원자폭탄 개발에서 시작되는 원전에 대한 학습된 기억을 호출했다. 

 

물론 오늘 중요한 뉴스가 역사적으로도 항상 중요하게 취급되지는 않는다. 가령 작년 말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 등은 2013년 오늘을 사는 우리들 대부분이 “여전히” 충격적으로 기억하는 뉴스다. 하지만 충격이 희석되면서 법안이 탄생하게 되는 분수령이 되었다거나, 총기 규제에 대한 팽팽한 입장차이와 갈등이 야기하는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의 원인이 된다면 그 경우에 아마도 샌디훅 사건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얼마 전 상원은 총기규제 법안을 부결시켜 버렸다. 샌디훅 사건에 대해 역사가 기록하는 집단의 기억은 아마 당분간 흐릿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그러나 역으로 많은 이들이 뉴스를 접하고도 별 생각 없이 그냥 스쳐갔을 다른 사건이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의미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가령, 조금 전 필자의 스마트폰에 깜빡였던 “Obama cancels Moscow summit with Putin in showdown over Snowden (스노우든 이슈로 인한 정치적 긴장 속에 오바마 대통령이 푸틴과의 모스크바 정상회담을 취소하다)는 뉴스. 대부분은 무심히 지나갔을 뉴스지만 외교적으로, 또 국내 정치적으로 스노우든의 폭로 (보스턴코리아 6월 14일자 본 칼럼 참조)가 계속적으로 미칠 파장은  역사적인  것이 될 확률이 높다.  

 

현재 양형공방중인 브래들리 매닝 사건 역시 아마도 이 범주에 들어오는 사건일 듯 싶다. 작년 2월, 미군 헬기가 이라크에서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공습하는 내용이 생생하게 담긴 동영상 “부수적 살인 (Collateral Murder)”을 비롯, 미국의 군사•외교 기밀 자료 약 72만 건을 위키리크스에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브래들리 매닝 일병에 대해 지난 달 말, 법적 판결이 내려졌다. 최고 감형 없는 종신형 혹은 사형까지 구형할 수 있는 “이적 행위”에 대해서는 무죄가 판결되었지만, 나머지 간첩죄, (정부 재산) 절도죄, 명령 불복종 등20여 개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로써 매닝 일병에게는 최장 136년까지 구형될 수 있다고 한다. 

 

브래들리 매닝 사건이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취급될 것을 점치는 까닭은 일차적으로 이 사건에 현재, 즉 21세기 초반을 객관화 시켜 이야기할 수 있는 두 가지 패러다임, 정보사회 소셜 네트워킹이라는 오늘 여기의 문화와, 탈 냉전 시대 미국의 전쟁이라는 주제가 중첩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브래들리 매닝에게 가장 무겁게 적용된 죄목이 간첩법 (Espionage Act)이라는 점은 (역사적 관점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 참고로 이번 판결에서 브래들리 매닝이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기록, 700여 건 이상의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자 관련 기록 등을 유출한 것이 간첩법 위반이라는 판단의 근거가 되었다. 

 

간첩법은 1917년,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전쟁 노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처음 제정되었다. 제정 당시 간첩법은 다소 애매하게 들릴 수 있는 표현으로 미국의 전쟁노력을 방해하거나 국방 기밀 정보를 외국 정부 혹은 허가 받지 않은 개인에게 넘기는 것을 금지했다. 1차대전에 반전여론을 펴던 사회주의자들 혹은 반전주의자들이 그 해 제정된 간첩법에 의해 처벌받았다. 사회 개혁의 열기가 “미국적이지 못한 모든 것”에 대한 극단적 반감, 즉 적색 공포 (Red Complex) 속으로 사그라들던 당시의 일이다. 

 

약 한 세기가 지난 지금껏, 몇 차례의 개정을 거치기는 했으나 여전히 간첩법은 유효하다. 브래들리 매닝의 케이스는 간첩법이 양심의 자유에 따른 행위, 이를테면 내부자 고발 (Whistleblowing)을 단죄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위키리크스, 시민의 자유 연합 (ACLU) 등은 “개인이 공익을 위해 진실을 알리는 행위가 간첩법의 처벌 대상이 될수 없다”며 매닝에 대한 법적 판결에 반발했다. 

 

역사는 1차 대전동안 발표된 간첩법과 시민 감시, 1차 대전 후의 적색 공포 덕에 1차 대전을 시민의 자유를 억압했던 추악한 장면 (Ugly Chapter in the Civil Liberties)이라는 표현으로 기록하고 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전쟁광 부시의 시대에 반(反)하여 그가 내세운 “변화 Change”의 아이콘으로 기록될 줄 알았던 오바마 대통령 재임기가 “Another Ugly Chapter in the Civil Liberties”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한 세기 전에 만들어진 간첩법덕분에. 

 

<더 읽어 볼 기사들> 

http://www.theguardian.com/world/2013/jul/31/bradley-manning-espionage-act-civil-liber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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