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바이 엽관제

by help posted Feb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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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 바이 엽관제

 

미국의 20대 대통령이었던 가필드 대통령이 워싱턴 디씨 기차역의 대합실에 들어섰다. 윌리암스 대학 동문회 참석차 매사추세츠로 떠나는 길이었다. 바로 그 때, 총성이 울렸다. 가필드 대통령은 총알 두발을 맞고 쓰러졌다. 가필드에게 총을 겨눈 암살범 찰스 기토는  “나는 건장파이며, 이제 아서가 대통령이다 (I am a stalwart and Arthur is president now)”라고 외쳤다. 1881년 7월 2일의 일이다. 

 

가필드의 사망은 테쿰셰의 저주?

 

혹자는 가필드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테쿰셰의 저주 때문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절묘한 해석을 내놓는다. 테쿰셰의 저주란 미국의 무력적인 인디언 정책에 앞장서 대항하던 인디언 추장테쿰셰가 윌리엄 헨리 헤리슨의 공격에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남겼다는 예언으로, 20년마다 0으로 끝나는 해에 당선된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망한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1840년 당선된 ‘그’ 윌리엄 헨리 해리슨은 1841년 대통령직을 인수하자마자 폐렴으로 사망했고, 1860년 당선된 아브라함 링컨 역시 남북전쟁 종전 직후인 1865년 암살 당했다. 1880년 당선된 가필드, 1900년 당선된 윌리엄 맥킨리 역시 모두 암살당했으며, 1920년 당선된 워렌 하딩은 1923년 심장마비로 사망, 그리고 1940년 (에도) 당선된 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4번째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1945년 뇌출혈로 사망한다. 또한 1960년 당선된 존 F. 케네디 역시 오스왈드에게 암살당했다. 

 

19세기 후반 공화당, 분열하다 

 

그러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가필드가 암살당한 것은 곪을 대로 곪아 있는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든 터져버렸을 사건이었다. 가필드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전, 나름의 화려한 정치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던 19세기 중 후반은 북부(연방)가 남북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공화당의 정치적 입지 또한 상당했던 시기이다. 그러나 공화당 내부적으로는 뉴욕의 상원의원이었던 로스코 콘클링 (Roscoe Conkling)이 이끄는 건장파 (Stalwart)와 메인주의 상원의원이었던 제임스 블레인(James Blaine)이 이끄는 잡종파 (Half Breeds)라는 두 계파가 갈등하고 있었다. 건장파는 엽관제 (spoils system)를 이용하여 주요 공직에 대한 정당의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편이었고, 잡종파는 엽관제가 가져오는 부패나 매관매직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며, 공직 선출에 대한 제도를 개혁하자는 입장을 내세우는 소장파 그룹으로 공화당의 근대화에 관심있어하던 이들이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건장파든 잡종파든 각 계파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에  관심이 지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엽관제의 비극

 

엽관제란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공직자 선출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도다. 1829년 앤드류 잭슨 대통령이 주요 공직이 북동부의 권문세가(!)에 의해 독점되고 있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주요 지지기반인 )개척민들에게도 공직 임명의 기회를 주기 위해 도입한 공직 순환 (Rotation in Office)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위 공무원 자리는 선거에서 이긴 정당의, 그리고 더 나아가 대통령을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특정 계파의 “전리품 (spoils)”이라는 문화가 정착되었고 숱한 문제의 근원이 된다. 

 

어쨌거나 1880년 선거의 후보를 놓고 갈등하던 공화당의 두 계파는 각 계파에서 선출한 각 1인을 다시 투표를 거쳐 대통령, 부통령 후보로 내보내는 데에 합의했다. 다수파인 건장파는 체스터 아서를, 그리고 소수파인 잡종파는 제임스 가필드를 각각 추천했는데, 당내 경선에서 가필드가 대통령 후보에 아서가 부통령 후보에 선출되었고, 공화당이 그 해 선거에 승리함으로써 가필드는 대통령이 되었다. 잡종파였음에도 가필드가 대통령후보로 지명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건장파인사들과도 적당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던 탓이다. 

 

대통령이 된 가필드는 스스로의 당선에 정치적으로 채무가 많은 잡종파에 집중적으로 “전리품”을 나눠주었다. 잡종파의 리더격인 제임스 블레인은 국무장관이 되었으나 건장파를 이끄는 콩클린은 상원을 사임했다. 가필드의 암살범으로 스스로 “건장파”라고 밝힌 기토는 체포 후에 범행의 동기에 대해 “가필드 대통령이 자신을 파리 주재 미국 대사에 임명하는 것을 거부한 데에 대한 앙심을 품었다”고 자술했다.

 

가필드 대통령은 병원으로 옮겨져 수차례의 수술을 거쳤으나 두어 달 뒤 사망했다. 암살범 기토의 말대로 대통령직은 부통령이었던 (그리고 건장파가 내세운 인물이었던) 아서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기토는 미국 대사로 파리에 가는 대신 교수형에 처해졌다. 한편, 가필드의 대통령직을 승계한 아서는능력에 기반하여 (Merit-based) 공직자를 임명하는 펜들턴 공무원법 (Pendleton Civil Service Reform Act, 1883)을 통과시켰다. 

 

2014년 6월 대한민국의 엽관제, 그 비극 

 

지난 4월, 정홍원 국무 총리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리직을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5월, 정홍원 총리의 후임으로 내정된 안대희 전 대법관은 ‘전관 예우’ 덕에 짧은 기간 벌어들인 십수억의 수임료가 논란이 되면서 사퇴했다. 그리고 6월, 새로운 총리후보로 지명된 문창극은 일본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 등으로 물의를 빚은 끝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라는 변을 남기고 사퇴했다. 결국 정홍원 총리 유임으로 가닥을 잡는 사태를 바라보면서 국민 모두 어이 상실이다. 결국 ‘그’ 정권 창출에 대한 기여도와 충성도를 가지고, 고위공직자를 임명하려다보니 빚어지는 참극들이다. 이 또한 엽관제의 비극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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