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땡스기빙

by help posted Feb 0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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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땡스기빙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땡스기빙데이가 저물어가고 있다. 아메리칸 원주민의 혈통을 물려 받은 내친 구 “그녀”는 베지테리언이면서 친구들에게 요리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땡스기빙 날이면 백인 친구들에게 육식요리를 해줘야 할것같은 기분이 든다”고 농담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말에 우리는 “학살에 동참하고 싶지 않아서” 육식은 사양하겠다고 응수했었고. 선문답같은 이 농담은 사실 꽤 아프다. 

땡스기빙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대륙에 왔던 첫해, 매사추세츠의 혹독한 겨울을 나면서 많은 어린아이와 노인들의 죽음을 지켜봐야했던 그 청교도들이 원주민 부족의 도움으로 옥수수 농사를 짓고, 그 첫 수확을 감사하며 인디언 부족까지 초대해 축일로 지켰던 데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있다. 수확한 옥수수와 칠면조, 그리고 인디언 부족이 가지고 왔던 사슴 고기로 서로 다른 인종이 함게 벌였던 3일간의 축제가 얼마나 훈훈했었을까하는 로맨티시즘이 생기는 대목이다. 물론 대부분의 땡스기빙 스토리는 바로 같은 장소에서 인디언 부족과 백인 정착민들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갔는지에 대해 침묵하기에 떠올릴 수 있는 훈훈함이지만. 

그때 칠면조 (혹은 다른 조류)를 감사의 음식으로 올렸듯, 매년 땡스기빙데이 하루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소비되는 칠면조가 4천5백만~5천만 마리라고 한다. 해마다 이맘때 “칠면조 종족 말살 (!)”이 벌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이 칠면조들보다, 혹은 베지테리언들보다 땡스기빙데이를 훨씬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미국의 선조들이 최초의 “감사 축제”를 함께 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던 아메리칸 인디언의 후예들이다. 

아메리칸 원주민들 중 많은 수가 매년 땡스기빙데이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청교도들이 처음 정착했던 플리머스 락이 바라보이는 콜스 힐에 모여 비탄의 날 (National Day of Mourning)이라는 이름의 애도 행사를 가진다. 비탄의 날은 1970년 왐파노아그족의 리더 프랭크 제임스가 아메리칸 원주민들에게 행해졌던 억압의 역사와 이에 대한 침묵에 강렬히 비판했던 연설을 계기로, 빼앗긴 명예와 역사를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이들이 매년 땡스기빙에 모이는 플리머스에는 청교도들의 정착촌과 그 유명한 메이플라워 II뿐만 아니라 왐파노아그의 한 추장 마사소이트의 동상도 있다. 마사소이트는 필그림들의 정착을 도왔으며 1621년 그들의 정착촌에 초대 되어 자신의 친족과 용사 90명을 이끌고, 사슴을 가져와 청교도들과 함께 최초의 감사 축제를 즐겼다고 기록된 바로 그 인물이다. 그런데 동상 아래에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협회의 명의로 적힌 글에 이렇게 적혀 있다. “백인들이 감사 축제를 벌이는 땡스기빙데이가,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비탄의 날의 시작이다.” 

알려져있다시피 유럽인들로부터의 옮아온 전염병, 그리고 오래 지속되지 못한 두 인종간의 평화로 대부분의 왐파노아그는 최초의 수확 감사 축제 후 채 반세기가 지나지 않아 거의 멸족을 했다. 마사소이트 추장은 1621년 영국과 평화협정을 맺었었는데, 그의 아들 메타코메트(일명 필립왕)가 추장이 된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되었던 평화적인 관계가 정착민의 수가 늘고 이에 따라 잦은 충돌과 전쟁으로 바뀌었고, 마사소이트 추장 역시 훗날 백인들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한다. 왐파그아노뿐만 아니라 다른 인디언 부족들이 유럽으로부터 이주해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리고 미국이 팽창하면서 겪었던 역사까지 감안해본다면 왜 이 날이 인디언 입장에서 비탄의 날이 되는 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버클리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댄 브룩은 몇 해 전 카운터펀치라는 인터넷 매거진에 기고한 “학살을 경축하며 (Celebrating Genocide: 이 글은 웹 상에 한글판 번역도 꽤 돌아다닐만큼 인기가 있다)”에서 이렇게 묻는다. “추수감사절은 단순히 휴일이 아니라, 미국인 전부가 신성한 날로 지키는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미국인들은) 진심으로 이 날을 경축해야 하는가…?” 

브룩이 묻고 있는 것은 미국의 선조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아메리칸 원주민들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제거해야할 “야만” 혹은 “위험한 이교”로 취급하고 인종을 청소해버리다시피 했던 것 처럼,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 미국이 각종 약자에 대한 비극적 학살에 가담했던 일이 수 없이 많았던 역사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다. 물론, 과거 선조들의 잘못에 현재의 미국인들이 가담했던 것은 아니고 그들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브룩은 그래도 역사적 맥락속의 희생자들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무작정 추수감사절을 기념하는 것은, 원주민들에게 이 날이 어떤 날이 될지를 고려해볼 때 적절치 않다며 이렇게 말한다. 

“나의 개인적인(따라서 정치적인!) 새해 결심은 학살을 경축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을 신성한 것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모욕적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