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로 독 트 린

by help posted Feb 0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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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로 독 트 린

 

1823 년 12월 2일,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먼로(James Monroe)는 미의회 연례 국정 연설 (The State of the Union)을 통해 향후 미국 외교의 핵심적인 방향을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우리는 유럽 열강들의 문제로 인한 그들 간의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전쟁에 참전하는 것이 우리의 정책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권리가 침해 당하거나 심각하게 위협될 경우에는 우리가 받은 피해에 분개하고 방어를 준비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과 유럽국가들 간의 순수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유럽 열강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거나 간섭하려는 더 이상의 어떠한 행위도 우리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처사로 간주[하여 대처]할 것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Living Documents of American History & Democracy 에서 발췌)

훗날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으로 불리게 되는 이 연설의 골자는 미국이 유럽의 분쟁에 간여하지 않는 만큼,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의 간섭을 반대한다는 상호 불간섭의 원칙과, 유럽 열강의 아메리카 대륙 내 식민지 추가 건설 시도에 대한 분명한 반대, 즉 비식민지화의 원칙이다. 물론, 당시 군사력 측면에서 보잘것 없었던 신생 미국이 내세웠던 외교적 입장이 유럽 열강들에게 이렇다할 영향력을 가졌을 리가 만무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먼로 독트린은 상당히 오랜기간 미국 외교의 핵심적 원칙을 구성했으며, 각종 국제 분쟁에서 어느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이 강대국의 면모를 갖추게 된 이후인 20세기에도 먼로 독트린은 재차 호출되었다. 이러한 생명력은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이 다양한 역학관계가 존재하는 국제질서의 특징과 더불어 고립과 팽창이라는 먼로 독트린의 두 얼굴 덕분이다. 

언뜻 보면 먼로 독트린에서 표방된 입장은 제 1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취했던 방어적 외교의 원칙, 즉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한 중립”의 연장선에 있다. 그런데, 먼로독트린이 탄생한 배경에서부터 실제 효과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확대”라는 실리적 측면에 닿아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대부분을 식민지화하고 있던 스페인이 과거의 패권을 거의 잃어가는 한편 라틴 아메리카 각국에서 독립의 열기가 뜨겁던 1815년, 미국은 스페인과 스페인의 라틴 아메리카 내 식민지 국가들 간의 전쟁에 대해 중립을 선언했으나, 한편으로는 이들 국가들과의 교역을 통해 경제적인 이득을 취했다. 라틴아메리카 각국들이 독립하자, 미국은 이들과 수교를 맺는 최초의 국가가 됨으로써 라틴 아메리카와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한편, 1822년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러시아, 프랑스는 베로나 회의( Congress of Verona)를 통해 스페인 대신 라틴 아메리카를 공동 통치할 계획을 수립하는데, 먼로 독트린은 이에 대한 거부 선언인 동시에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지위를 확실히하는 계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의 남미 진출을 저지하고자했던 영국은 먼로주의 선언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어쨌건, 먼로주의가 본격적으로 “팽창주의”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혹은 팽창주의의 시각에서 재해석되기 시작한 것은) 1840년대 하와이 합병 당시 먼로 독트린의 적용범위를 아메리카 대륙을 넘어선 “비유럽권”으로 확장하면서부터였다. 이후 1860년대의 알래스카 매입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었다. 미국이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에서의 입지를 공고히하게 된 계기가 되는 미국-스페인 전쟁도, 아시아 각국에 대한 패권 확대도, 먼로독트린의 팽창주의적 버전이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른바 먼로 독트린에 대한 루즈벨트식 귀결 (Roosevelt Corolly)이 등장하는데, 이 또한 먼로 독트린에 담긴 팽창주의적 시각이 노골적인 방식으로 표현된 한 예이다. 즉,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럽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 루즈벨트의 “논리적” 근거였다. 

그런데 상호 불간섭과 비식민지화를 표방한 먼로 선언에 팽창주의적 코드는 어떻게 스며들 수 있었을까? 먼로 선언을 탄생 시킨 연설문을 잘 살펴보면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의 영향력 배제와 유럽의 문제에 대한 미국의 불간섭 등은 명시화되어 있지만,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비식민지화 혹은 남 북미 대륙간의 상호 불간섭 같은 원칙은 애초에 고려되어 있지 않다. 사실 먼로 독트린이 암암리에 강조하고자 했던 바는 미대륙에서의 맹주는 미국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이식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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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로 독트린의 팽창주의적 코드는 절대 찬성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약소국 미국이 자신을 지켜내고, 미래의 위협을 제거하면서 강대국으로 성장할수 있던 고도의 외교적 승부수같은 묘미는 우리 정부도 좀 배우면 안될까 싶다. 북한의 연평도 포탄 공격 이후 여러 날이 지나도록, 협상도 응징도 미국을 바라보고, 중국의 눈치를 봐야한다는 상황이 답답했다, 그랬다. 


<일러두기>
먼로 독트린을 탄생시킨 이 연설문은 사실 존 퀸시 애덤스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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