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당신의 꿈은 안녕하십니까? 흑인 민권운동과 “I have a dream”

by help posted Feb 0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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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당신의 꿈은 안녕하십니까? 흑인 민권운동과 “I have a dream”

 

작년 12월 1일, 흑인 아이와 백인 아이들이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리는 정겨운 이미지가 구글의 메인에 떴다. “Google celebrates the 55th anniversary of the day Rosa Parks refused to give up her seat on the bus.”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 기사의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 되었던 1955년 12월 1일을 기념하는 이미지였다. 그 날의 사건이 앨러배마에서 몽고메리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촉발 시켰고, 결국은 1964년 민권법 (The Civil Rights Act of 1964) 제정에 이르는 데에까지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으니 흑인 민권운동사에서는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사건이었을 것 같다. 

흑인 민권 운동의 대부 마틴 루터 킹 목사 역시 몽고메리의 버스 보이콧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민권운동에 투신하게 된 인물이다. 로자 파크스 사건 직후 흑인들과 페미니스트들이 몽고메리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결의하면서 집회 장소로 택했던 곳이 바로 보스톤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마친 후 갓 부임한 킹 목사가 사역했던 한 침례 교회였고, 이를 계기로 킹목사는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의 의장직을 수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로자 파크스 사건이 있기 직전, 목회에 전념하기 위해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 (NAACP, 유색인종 지위 향상 위원회) 의장직을 거부했던 데다, 희생이 뒤따를 것이 뻔한 일이었지만, 앨러배마의 당시 상황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임을 직감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킹 목사가 합류한 몽고메리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은 로자 파크스 사건 후 일년 여 만에 흑백 분리 법안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얻어내며 승리했고, 민권 운동은 남부 전역을 휩쓴다. 이후 킹 목사는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는 기독교의 평화론을 내세운 “투사”로 활약하게 된다. 물론 킹 목사와 동시대인이었고 역시 흑인의 저항을 주도했지만, (자수성가한 중산층 흑인 가정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킹 목사와는 달리 뉴욕과 보스톤의 빈민가를 전전하면서 성장했고, 흑인들의 분노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내며 과격하고 급진적인 저항의 방식을 택했던 말콤 엑스는 종종 킹 목사를 “흑인의 탈을 쓴 백인”이라며 신랄히 비판하곤 했었다. 

킹 목사의 “비폭력 불복종”이라는 저항의 방식이, 백인들이 느끼기에는 “안전한” 테두리 속에 흑인들의 저항을 가두는 무력한 투쟁이라고 판단했던 탓이다. 하지만 당시는 인종주의자들이 보기에 갈등을 드러내기보다 봉합하려는, 비폭력 불복종의 저항 방식조차도 용납이 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킹 목사는 여러 번 테러의 위협에 시달렸고,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투옥되어야 했으며, 그의 말로도 암살에 의한 것이었으니까. 즉, 적어도 반세기전 어떤 이들에는 투표권같은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이고도 기본적인 권리를, “온건한 방식으로” 내세우는 일조차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일이었다는 이야기다. 

킹 목사와 당대의 흑인들이 지녔던 내적인 강인함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전국적인 민권운동이 들불처럼 타올랐던 63년 8월, 워싱턴 DC에서 25만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킹 목사가 남겼던 연설 I have a dream에 그 해답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비록 역경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에서 옛 노예들의 후손들과 노예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꿈입니다. … (1963년 8월) 


*** 

 

사실, 흑인 민권운동의 역사보다는 하루의 달콤한 공휴일이 반가운 많은 이들도 익히 알고 있을 연설, “ I have a dream”이 생각나는 순간, 나는 생뚱 맞게도 “그래요 난 꿈이 있어요 …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라며 인순이의 노래 “거위의 꿈”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로자 파크스와 킹 목사의 시대에는 피부색과 관계 없는 투표권이라든가 동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 같은 것들이 운명 혹은 현실의 벽을 허물어야만 이룰 수 있는, 어찌 보면 헛된 꿈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또 말콤 X가 비판했던 것처럼, (흑인들이 투표권을 얻어냈다고 해도), 대다수의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차별 받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는 꿈 덕에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바뀐다면, 이루지 못하는 꿈이라고 헛된 꿈일까. 오늘 당신의 꿈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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