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 운동과 19세기 후반의 사회 진화론

by help posted Feb 0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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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 운동과 19세기 후반의 사회 진화론

 

1991년 4월, 학교측의 일방적인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던 500명의 명지대 시위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1200명의 전경이 투입되었고, 사복 검거조인 백골단은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그 와중에 사망한 명지대 1학년생 강경대씨 치사사건은 그해 봄 독재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대중 투쟁과 (김지하 시인이 죽음의 굿팟이라 조롱했던) 분신, 투신정국의 촉발 요인 (triggering factor)이 되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다시 등록금이다. 2011년, 대학생들은 거리로 나왔고, 현재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등록금 부담에 군대를 선택한 이들 또래 젊은이들이 전경이 되어 시위현장에 선다. 학생들을 해산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경찰들도 때론 대학생 혹은 곧 대학생이될 자녀들의 등록금 걱정을 해야하는 아버지다. 

반값 등록금이 사회적 아젠다가 된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대학생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은, 한나라당이 당 대표까지 나서서 반값 등록금 실현을 약속하는 마당에 (아직 실현해본적도 없는) 반값 등록금 지원 대상의 기준을 평점 B 이상으로 제한하고, ‘부실대학’ 학생들에게는 지원을 재고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었던 듯 싶다. 

부유층 학생일수록 부실대학이 아닌, 즉 사회적으로 더 네임밸류가 있는 대학에 들어가기가 수월하다. 빈곤층 학생은 두세개의 ‘알바’를 뛰어도 등록금 마련하기가 힘들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수업이나 자기 공부에는 소홀해질 확률이 높다. 결국, ‘검토중’인 안이 그대로 실현된다면, 반값 등록금의 혜택 조차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키워버리는 기제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잠깐. 이쯤에서 오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값 등록금 운동이 미국사와 대체 무슨 관계가 있냐시면, 그러기에 이 칼럼의 제목이 “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라고 상기시켜드리고 싶다.)

도금시대 (Gilded Age)의 사회 진화론 (Social Darwinism)


앤드류 카네기, 존 록펠러,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 존 피어폰트 모건… 19세기 말 미국의 키워드는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는 산업의 발전과 그로 인해 엄청난 부를 축재했던 거대 산업 재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미국 내 기업의 1퍼센트가 전체 제조업의 33%를 장악하고 있었다.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 컴퍼니는 정유산업을, 카네기의 카네기 제강은 미국 철강 산업을 지배하고 있었다. J.P. 모건이 금융 왕국을 세운것도, 혹은 밴더빌트 ‘왕조’와 제이 굴드가 철도 산업 전체를 쥐고 흔든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그리고 대공황 직전인 1929년, 상위 0.1%가 미국의 전체 부의 20%를 독점했다.

1873년 마크트웨인은 The Gilded Age (도금시대)라는 제목의 풍자소설로 탐욕과 물질 만능주의의 세태를 고발했는데, 실제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엽까지는 ‘도금’의 시대였다. 황금으로 치장을 한 화려한 금막은, 그 한꺼풀 아래 열심히 일을 해도 기본적인 생계를 위해 필요한 충분한 수입을 갖지 못하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처한 현실을 가리곤 했다. 사회 전체적으로 부의 총량이 늘어났지만 빈부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졌기때문에, 거대 산업 재벌들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이에 대한 산업재벌들의 대답으로 동원된 것이 바로 사회진화론이다. 사회 진화론은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 (Herbert Spencer)가 도입한 개념으로, 사회는 부적합한자들을 제거하고 적합한 자를 살아남게 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이다. 재벌들은 자신의 부와 권력이 타고난 근면 성실함과 꾸준한 노력, 그리고 검약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또한,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적자 (the fittest)가 생존하게 된다는 다윈의 이론은 시장경제에도 들어맞는다고 믿었다. 즉, 자신들은 시장경제에서 가장 ‘적합한’ 혹은 경쟁력있는 개인들이기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댄 것이다. 

적자(適者) 혹은 강도 귀족


그렇다면 19세기 말엽의 산업재벌들, 즉 자칭 시장경제 체제의 적자들은, “시장 경제의” 수요와 공급 곡선 사이에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에 충실하게 기업을 확장시켰을까? 천만의 말씀! 산업재벌들에게 왜 강도귀족이라는 애칭(!)이 붙었는지 궁금하다면, 일단 이들이 어떻게 기업을 키웠는지를 보라. 가령 석유재벌 록펠러는 남북전쟁 직후 스탠더드 오일 컴퍼니를 설립하자마자 경쟁 정유회사들을 하나씩 사들였다. 잠재적인 경쟁자를 제거해나가면서 동시에 덩치를 키운 것이다 (수평적 합병). 점차 록펠러는 송유관, 창고, 화물차 등 석유 산업의 다른 업종을 합병하면서 회사를 확장하기 시작한다. (수직적 합병). 유사하게 카네기 철강회사는 제철소와 광산, 철도 등의 기업을 통제함으로써 기업을 성장시켰다.산업 재벌들은 그렇게 자신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경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데에 온 힘을 기울였다. 한편, 거대해진 공룡 기업들이 해당산업을 장악해갈수록 시장 경제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이 되어갔다. 

반값 등록금 운동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사회의 약자들이 도태할수 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는 결국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에 다름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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