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 전쟁은 끝났다! 당신이 원한다면

by help posted Feb 05,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존 레논: 전쟁은 끝났다! 당신이 원한다면

 

1980년 12월 8일, 비틀즈의 존 (윈스턴 오노) 레논이, 그 자신의 광적인 팬이었던 한 남성의 총격으로 사망한다. 그가 ‘이미’ 사망했을때, 나는 ‘고작’ 유치원생이었다. 중학교 무렵, 집에 굴러다니는 그의 앨범들을 편안하게 즐겼던 것 같긴 한데, 팝 뮤직에 조예…따위와는 거리가 먼 내가, 역사를 읽기 전에 가졌던 레논에 대한 정보는 오노 요코 때문에 존 레논이 이상해졌고, 비틀즈와 사이가 틀어졌다는 식의 편/파/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었다. 

BGM: John Lennon, Imagine 그리고 John Lennon, Power to the People


존 레논이 이상해졌다? 한 때 세계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뮤지션으로 꼽혔던 존 레논은 1970년대 FBI의 지속적 감시대상이었다. FBI는 존 레논이 <이매진>이니 <파워 투더 피플>같은 노래를 통해 혁명적인 사상을 유포하려한다고 봤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감시했다고 한다. 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가령, 존 레논은 <이매진 (1971)>을 통해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상상해보라고 달콤하게 속삭였다. 


“…국경이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그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서로 죽일 일도 없고, 종교 역시 없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간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내게 몽상가라 하겠지만, 그게 나만의 꿈은 아니죠... 무소유를 상상해보세요.. 욕심을 낼 필요도 궁핍할 필요도 없고 인류에만 넘치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공유하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이로써 존 레논은 반전주의자, 평화주의자, 이상주의자의 코드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듣다보면 절로 박자 맞춰서 박수를 치게될 만큼 경쾌한 리듬으로 존 레논이 불러주는 <파워 투더 피플 (1971)>은 또 어떤가. 이 곡은 <이매진>보다 한술 더 뜬 혁명에, 반자본주의에, 페미니즘코드까지 골고루 “체제 전복적인” 과격한 메세지를 담고 있었다. 


“민중에게 권력을, 민중에게 권력을…지금 당장. 혁명을 원한다고 말하자. 발을 딛고 거리로 나가자…. 민중에게 권력을, 노래하라, 지금 당장, 지금, 지금, 지금… 수많은 노동자들이 아무 대가 없이 일하고 있어. 그들의 것을 돌려주는 것이 좋을 걸… 동지들이여 형제들이여 왜 당신들은 여성을 소유물처럼 집에 가두려는가. 그녀들은 그녀 자신이어야 해. 그러니 그녀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어 ... 민중에게 권력을, 노래하라... 민중에게 권력을 지금 당장”

그런데 존 레논이 비틀즈의 존 레논으로서보다는, 문화로 혁명을 꿈꾸었던 반전주의자 존 레논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기는 위의 두 노래가 발표된 때보다는 조금 앞선다. 1969년, 오코 요노와의 신혼 여행지에 찾아 온 기자들 앞에서 이들은 “평화에게 기회를 주자”고 써붙인 채 침대에 앉아 ‘2인 시위’를 했다. 같은 해 크리스마스 무렵, 존 레논은 전 세계 11개 도시에 “전쟁은 끝났다. 당신이 원한다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적힌 자비 광고판을 내걸었다. 

그런데 그가 반전 운동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존재했고, 전세계 반전 운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은 사실겠지만, 존 레논의 퍼포먼스가 그 자체로서 미국의 국익에 해가 되거나 위협이 되는 것이었을까? 


미국의 베트남전 반대 운동은 1965년 3월 미국의 전투부대가 베트남에 파병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 당시 대학생들은 teach-ins라는 이름의 토론회를 가지고 전쟁의 실상에 접근하고자 했다. 버클리에서는 자유 발언 운동이 벌어졌다. 65년 4월 17일 워싱턴에서 민주 사회 학생 연합 (SDS: 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의 주도하에 25,000명의 시위대가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행진을 벌였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반전운동 세력은 색깔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반전 운동이 더욱 불붙게 된 계기는 66년 2월, 미국 대학생들에게 병역 시험을 치르게 하고 성적이 낮은 순으로 징병을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허쉬 규정이 발표가 되면서부터다. 허쉬 규정에 대한 반발로서 전국의 학생들은 전쟁 저항자 연맹(WRL: War Resisters League)을 결성하고 징병 통지서를 불태웠다. 징집 기피로 인해 숱한 젊은이들이 ‘범죄자’가 되어버렸다. 

개전 초기 반전운동 세력은 미국 내에서도 소수였지만, 67년 경 베트남전은 남베트남의 부패한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 특히 부녀자를 대량 학살하는 ‘부도덕한 전쟁’이라는 인식이 더 강해졌고 점차 반전 여론이 높아지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베트남전의 인종주의, 제국주의적 면모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반전 여론은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군하게 만들었고, 미국 정부는 도덕성에 있어서 적지 않은 공격을 받게 된다. 전쟁은 끝났다. 숱한 그들이 원했기에. 


미국을 위험하게 만들었던 것은, 존 레논이 전달했던 혁명적인 메세지가 아니라 강대국으로서의 오만함이었다. 그리고 FBI가 혹은 미국 정부가 두려워해야 했던 것은, 존 레논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국민이었다.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