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을 열며, 1964년 미시시피의 여름에서 길을 묻다

by help posted Feb 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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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을 열며, 1964년 미시시피의 여름에서 길을 묻다

 

1965: 한 세기만에 제기능을 하게 된 수정헌법 15조 


이 칼럼에서 한 두차례 등장했던 1965년의 투표권법 (Voting Rights Law 혹은 Civil Right Act of 1965)은 1950~60년대 흑인들의 민권 운동사에서, 적어도 입법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로 꼽아야 할 것 같다.

1870년 통과된 수정헌법 15조에서는 “미국 시민의 투표권은 인종, 피부색, 혹은 과거의 노예 상태를 이유로 거절되거나 제한되어서는 안된다”고 못 박았다. 이 조항은 남북전쟁 후 “미국에서의 노예제를 철폐”하는 수정헌법 13조와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귀화한 자”라는 시민권의 헌법적 정의 (따라서 미국에서 태어난 흑인들의 시민권을 긍정한)를 밝힌 수정 헌법 14조에 따라 나온 재건기 수정 헌법 (Reconstruction Amendments)의 완결판이다. 

그러나 북부 주도의 남부 재건계획이 갑작스레 막을 내리면서, 남부 주의 정치와 경제는 다시 과거로 회귀하였고, 수정 헌법 15조는 거의 한 세기동안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노예제는 철폐되었지만 노예 노동 대신 소작노동을 하거나 사회의 허드렛일을 하는 대다수 흑인들은 여전히 가난했고 그 가난은 되물림되었다. 흑인들에게 시민권이 주어졌지만, 그들은 인종 분리의 장벽 앞에 “다른” 시민이었다. 노예제는 철폐되었지만 남부는 인종차별적인 상태 그대로 남아있었다. 

심지어 헌법이 보장한 “투표할 수 있는 권리”조차 제대로 행사될 수 없었는데, 남부 각 주들이 19세기 말엽부터 매겼던 투표세 (Poll Tax)라든가, 문맹 테스트 혹은 헌법능력 소양시험과 같은 이중 삼중의 기만 때문이었다. 흑인들이 실제로 투표권을 제한 받은 이유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인종, 피부색, 혹은 과거의 노예 상태”는 아니기에 기만적인 장치들이었다. 

어쨌거나 2차대전을 지나면서 급속히 인종간 평등의식이 물꼬를 트게 된다. 1950년대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판결, 몽고메리 버스보이콧 사건, 자유 승차 운동 (Freedom Rides, 주간 교통 수단에서 인종간 분리에 항의하던 시위) 등으로 흑인들의 민권운동은 크게 성장했다. 


그렇게 성장한 민권단체들은 1962년, 흑인들을 대상으로 유권자 등록 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1964년 남부 각 주를 중심으로 전국적 유권자 등록 운동이 전개되는데 일명 미시시피의 여름이다. 긴 산고끝에, 65년의 투표권법은 결국 그렇게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


한국의 민주화라는 시대가 커다란 부채감을 지니고 있는 김근태 민주당 상임 고문이 별세했다고 한다.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하였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여러 차례 죽음을 넘나드는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한 후, 그 실상을 알려 국제 인권상을 수상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고문 후유증과 그로 인한 합병증이 그의 평생을 괴롭혔다. 그래도 조금은 더 정의롭고 조금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열심히 살았고 정치했던 매력적인 사람. 

너도 나도 빚진 자라고 뒤늦은 고해성사를 내놓는 대목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질무렵, “그들”도 생각난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29만원 밖에 없어서 국고에 환수할 능력은 없지만 전 가족이 호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전두환 전대통령, 당시 김근태를 고문했던 안기부를 이끌었지만 여전히 건재하여 현재 건강보험공단을 이끌고 있는 정형근, 그리고 전직 고문 기술자로 김근태에게 반 인권적인 고문을 행했던 장본인으로, 출옥후 목사가 되었다 해서 화제가 되었던 알려진 이근안 경감.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타계 소식에 언론은 이근안 전 경감을 집중 조명했다. “당시 나의 행동은 일종의 애국이었으며 굳이 고문 기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예술…” 운운하는 발언이 경악스러웠기때문일 것이다. (이런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는 회개라는, 그러니까 기독교의 기본기를 깡그리 무시하는 건가?)

한나 아렌트의 유명한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를 보자. 아렌트는 2차 대전당시 나치 독일의 유태인 홀로코스트의 실무를 진두 지휘한 장본인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에서 받은 충격을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했다. 직접 목격한 아이히만은, 특별히 나쁜 동기에 의해서 유태인 학살에 앞장 섰다기보다는 그저 맡은 임무에 성실하고 충실한 “보통 사람”이었고, 자신의 임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 

이로부터 아렌트는 악의 존재이유가 인간의 도덕성 결여때문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악에 대해 비판이나 저항 없이 그대로 선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고문기술자로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리고 그가 자신의 고문행위를 애국적이라고 굳게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독재라든가 국가보안법에 대해 무비판적인 “수용”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김근태가 입원 직전 블로그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2012년을 점령하라”라고 한다.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2011년 10월 김근태)

한계 투성이인 대의민주주의지만 투표를 통해, 그리고 비투표적인 참여를 통해 정치에 발언하고 비판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악의 존재이유라면? (끔찍하지 않은가!) 2012년 참여할 수 있는 투표에 참여하고 발언하고, 유권자로 등록하시라. 1964년 미시시피의 여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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