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의 역사 (4) 1920년대 공화당, 안녕하셨습니까?

by help posted Feb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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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의 역사 (4) 1920년대 공화당, 안녕하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대자보가 릴레이처럼 번지고 있다기에 무엇인가 뉴스를 봤다. 대학에서, 고등학교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SNS에서, 저마다의 실명을 걸고 “안녕하십니까, 저는…”의 외침이 퍼진다고. 그 시발점은 고려대학교의 한 대학생이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 (그리고 그로 인한 해고), 국정원의 대선 개입, 밀양 송전탑 문제 등 하 수상한 시절을 사는 우리들은 정치적 관심을 끊고 정말 안녕할 수 있는 지를 반문했던 한 대자보였다.  

 

안녕들 하십니까?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입니다.”라고 시작된 대자보는 느낌표로 질문하며 마쳤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공화당의 역사를 (거꾸로) 거슬러가면서 지난 칼럼에서 살폈듯, 1980년대는 공화당이 화려하게 부활한 시기, 1960년대는 공화당 부흥의 내적 토양이 다져진시기였다면, 대공황 시기인1930년대에서 아이젠 하워가 20년 만에 백악관에 입성하는 1952년에 이르는 시기는아마 미국 공화당에 있어20세기 최고의 암흑기로 기억되지 않을까싶다.

 

1930년대는 극소수를 제외한 누구에게나 암울했던 대공황의 시기였으니 공화당이 예외일수는 없었겠다…는 이유때문이 아니다. 1930년대 미국과 전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미국 공화당의 경제정책이 결코 작지는 않았다.  물론 대공황 당시에는 1929년의 뉴욕 월스트릿 주식시장 붕괴 이후 후버 행정부(공화당)이 공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후버때문에, 이 모든것이 다 후버때문에”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공화당의 “무능”에  대한 비판이 대세였을 것이다. 그러나 가시적인 재앙이 후버 재임기에 터졌다뿐, 미국인들이 “쿨리지의 번영”으로 기억하는 쿨리지 대통령 재임기에도 그 이전의  하딩 대통령 재임기에도 미국 경제는 대공황을 향해 가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1933년부터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민주당)이 추진했던 뉴딜은 도시 저소득층과 노동계급의 민주당 지지세를 공고화했을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층이었던 흑인이 민주당으로 이탈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차 대전 후 미국이 세계의 정치적 경제적 패권을 장악한 시대, 레드 컴플렉스와 불관용의 시대, 재즈의 시대, 자동차의 시대, 금주법의 시대, 도시와 농촌 혹은 종교와 문화적 개방성이 갈등하던 시대, 1920년대의 얼굴은 다양하다. 그러나 1920년대가 저물어가던 1929년 시작된 대공황을 이해하려면 1920년대가 공화당의 결과적으로는 재앙이 된 황금기였던 사실도 이해해야 한다.

 

1920년 당선된 하딩 대통령, 1923년 하딩이 암살된  후 대통령직을 승계하고 1924년 선거에서 당선된 쿨리지 대통령, 그리고 1928년 선거에서 당선된 후버 대통령이 모두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었으니 1920년대가 공화당의 시대였다는 데에 이견을 달기 어려울 것이다.

 

후버 대통령이 (물론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나기도 했겠지만)  1928년 선거에서 쉽게 당선될 수 있었던 데에는 “공화당의 번영”을 이어가겠다는 약속을 미국민이 신뢰했다는 데에 있다. 적어도 선거 시기 그가 꿈꾸던 미국은, 그의 재임 1주년이 지나기도 전에 산산조각 나겠지만, 전 미국 가정의 저녁시탁에서 치킨 슾이 끓고 있는 풍요로움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전임 하딩과 쿨리지 시기 미국의 (표면상) 번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핵심에는 하딩 재임기 재무장관이었던 앤드류 멜론의 경제정책이 있다. (멜론의 경제 정책은 쿨리지 재임기에도 이어진다.) 멜론하면 생각나는 피츠버그의 알류미늄 황제 멜론이다. 당시 미국에서 상위 0.001%에 속하던 부유층이었던 멜론의 경제정책 핵심에는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감세가 있다. 멜론이 부유층에 대한 세금 부담을 줄여야한다고 주장했던 근거는 “낙수효과” (Trickle Down)이론이다.

 

낙수효과 이론은 물이 세율이 높을 수록 투자자들은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는 공장보다는 자본 증식에 유리하고 세금이 면제되는 투자에 눈을 돌리게 되며, 결과적으로는 세수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투자 여력이 높은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투자와 고용을 늘려서 국가 전체의 경제 성장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또 한편으로는 대기업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하여 과거 27%의 관세율을 38.5%까지 높였던 것. 결과적으로는 독일의 유럽 및 미국에 대한 채무 지불 능력을 근본적으로 훼손, 대공황과 2차 대전에 직, 간접적인 형향을 끼치게 된 관세정책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당시 공화당 대통령들은 경제부문에 있어 정부의 역할은 제한되어야한다는, 즉 기업에 대한 탈규제에 가까운 자유방임의 철학이었다. 정부의 규제가 적을 수록 기업은  사회의 부를 증가시킬 수 있었다고 믿었던 것.

 

그러나 현실은? 일부의 부유층은 아마 안녕했을지도 모르는 그 시기,  당장의 총생산은 훌륭해보였을 지 모르지만 대공황의 싹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1920년대 공화당의 황금시대는, 스스로의 운명에게는 재앙적인 번영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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