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볼 영웅 말콤 버틀러의 비하인드 스토리

by help posted Feb 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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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볼 영웅 말콤 버틀러의 비하인드 스토리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는 풋볼이다. 그리고 32개 프로 풋볼팀 중에서 최고의 왕좌를 가리는 수퍼볼 경기는 단일 경기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고 광고료가 가장 비싼 경기다. 수퍼볼 경기에 출전하는 스타 플레이어의 몸값은 수백만 달러를 호가한다.

 

2015년 2월에 있었던 49회 수퍼볼 경기는 무명의 코너백(풋볼에서 패스 공격을 주로 방어하는 수비수) 말콤 버틀러가 영웅으로 등극한 무대였다. 수퍼볼 MVP는 마지막 공격 드라이브를 성공 시키며 경기를 역전 시킨 패트리어츠의 쿼터백 탐 브래디가 차지했지만 버틀러가 없었다면 패트리어츠는 수퍼볼 우승 트로피를 차지할 수 없었다.

 

수퍼볼 경기 종료까지 18초가 남은 상황, 패트리어츠는 28 대 24로 시호크스를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시호크스는 이미 엔드존 1야드 앞까지 전진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공격만 터치다운으로 연결하면 패트리어츠를 꺾을 수 있었다. 특히 시호크스에는 NFL 최고의 러닝백이 있었기 때문에 풋볼의 여신은 시호크스의 손을 들어주는 듯 했다. 그러나 시호크스는 오히려 패트리어츠의 허를 찌르기 위해 패스 공격을 시도했고, 시호크스의 쿼터백 러셀 윌슨의 손을 떠난 풋볼은 리시버가 아닌 버틀러의 품에 안겼다. 이 인터셉션이 있기 전까지 버틀러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수퍼볼 경기가 있기 1년 전만 해도 버틀러는 웨스트 알라바마 대학 소속 풋볼 선수였다. 웨스트 알라바마 대학이 속해 있는 디비전 2는 대학 풋볼 리그 중에서도 3부 리그에 속하는 하위 리그다. 대학 상위 리그에 속한 풋볼 선수들도 프로 무대에 진출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프로 풋볼팀에 입단하더라도 출전 기회를 얻기는 더욱 어렵고 힘들다. 버틀러처럼 대학 하위 리그에 속한 선수가 패트리어츠 같은 명문 풋볼팀에서 출전 기회를 얻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패트리어츠의 빌 벨리칙 감독은 버틀러에 대해 “버틀러의 당시 상태와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상태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었다. 우리가 강이나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버틀러에게는 거대한 바다를 건너는 일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버틀러도 대학 졸업을 앞둔 다른 풋볼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팀에 입단하기 위해 2014년 3월에 테스트를 봤다. 프로팀 스카우터들은 버틀러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평범한 체구에 40야드를 4.6초에 주파하는 버틀러에 대한 스카우터들의 평가는 “탈락”이었다.

 

프로팀의 스카우터들은 아무도 버틀러의 에이전트에게 접촉하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7라운드의 드래프트 동안 버틀러를 선택한 팀은 없었다. 버틀러는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버틀러는 고향으로 돌아가 시간당 7.25달러를 받으면서 파파이스에서 치킨과 비스킷을 굽는 일을 다시 해야 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버틀러에게 연락이 왔다. 연습 선수 자리가 하나 비어 있으니 보스턴으로 오라는 패트리어츠 수비 코치의 전화였다. 2014년 5월, 버틀러는 비행기에서 내려 보스턴 공항에 발을 내디뎠다. 버틀러가 거대한 바다를 건너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벨리칙 감독은 “버틀러의 훈련 과정에서 일부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리시버들은 버틀러를 제쳐 버리고, 버틀러는 수비해야 하는 선수를 놓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버틀러가 태클은 잘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벨리칙 감독은 “실제 경기에서 뛰는 속도와 바닥에 금을 그어놓고 시간을 재며 뛰는 속도는 다르다. 버틀러는 40야드 달리기 속도보다 실제 경기를 할 때 훨씬 빠르다”고 말했다.

 

패트리어츠에서의 연습 경기 첫날, 버틀러는 프로 2년 경력의 리시버를 상대로 한 1:1 연습에서 인터셉션을 성공시켰다. 다음날 두 번째 연습 경기를 준비할 때, 버틀러는 사무실로 호출을 받았다. 벨리칙 감독은 다른 선수를 방출하고 버틀러를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벨리칙 감독은 “버틀러가 뛰는 모습을 보면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술이 있고, 폭발력이 있다. 특히 짧은 거리에서 폭발적으로 반응한다. 첫날 연습하는 것을 보고, 이 선수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2014년 8월, 패트리어츠는 레드스킨스와 함께 버지니아에서 시즌 개막 전 마지막 합동 훈련을 했다. 프로 무대에 데뷔하기 위해서 버틀러는 이곳에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야 했다. 버틀러의 상대는 3번 올스타에 선정된 디션 잭슨과 이전 해에 NFL에서 가장 많은 패스를 받은 피에르 갸르송이었다.

 

버틀러의 연습 경기를 본 동료 선수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패트리어츠의 리시버 브랜든 라펠은 “잭슨과 갸르송을 상대로 한 1:1 연습에서 버틀러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때부터 버틀러가 특별한 선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버틀러는 오프 시즌 동안 패트리어츠의 라커룸에서 화제의 중심이었다. 아직 주전 선수들이 캠프에 합류하기 전이라고는 하지만 버틀러의 인터셉션 행진을 계속되었다. 버틀러에게는 타고난 자질이 있었고, 패트리어츠에서 이 재능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패트리어츠의 백업 쿼터백 지미 거라폴로는 “버틀러는 리시버와 똑 같은 동선으로 움직인다. 보통의 코터백은 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코너백은 리시버를 보고 따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한 발짝 떨어져 있다. 이 움직임 하나만으로도 버틀러는 주목을 받을만했다”고 말했다.

 

NFL 최고의 패스 수비수 중 한 명인 데빈 맥커티 역시 버틀러를 눈여겨 봤다. 맥커티는 “버틀러는 고개를 돌려 풋볼이 날아오는 것을 확인하면서도 더 빠르게 뛸 수 있다. 굉장히 드문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상관 없었다. 시즌 개막 전 연습 기간 중 버틀러는 패트리어츠 주전 리시버들을 꼼짝 못하게 묶어 두는 철벽 수비를 자랑했다. 이때 당시 버틀러의 별명은 리시버를 묶어 놓는 “노끈”이었다.

 

시즌 개막 전 최종 선수 명단을 발표하기 전날, 벨리칙 감독은 노끈을 불렀다. 벨리칙 감독이 물었다. “여기에서 지낼 곳은 있나?” 버틀러는 “없습니다. 지금 팀 숙소에 머물고 있지만, 앞으로는 여기저기 돌아다닐 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버틀러는 최종 선수 명단에 남아 패트리어츠 팀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개막 전 연습 경기에서 계속해서 인터셉션을 성공했다. 매주 금요일에 있었던 연습 경기에서 버틀러의 인터셉션 행진은 몇 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2014년 시즌이 시작되었지만 버틀러는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다. 프로 첫 해이기 때문에 경기에서 대단한 활약을 기대하기 보다는 실전 경험을 쌓는다는 교육의 성격이 강했다. 패트리어츠에는 버틀러 앞에 쟁쟁한 코너백이 5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버틀러를 경기장에서 보기는 어려웠다.

 

버틀러가 뛰어난 재능이 있고 연습 경기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더라도 여전히 경험이 없는 무명의 신인일 뿐이었다. 버틀러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벨리칙 감독은 많은 시간을 할애해 버틀러의 정신 무장을 도왔고 1:1로 지도하며 실력을 키워나갔다. 패트리어츠 리시버들도 버틀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버틀러는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나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았다.

 

수퍼볼 경기 이후 버틀러는 일약 유명 인사가 되었다. 각종 시상식과 이벤트에 게스트로 초대를 받고, 고향에서는 영웅의 귀환을 성대하게 반겼다. 그리고 버틀러는 한 번 반짝하고 사라지지 않고 2015년 패트리어츠 최고의 쿼터백으로 성장했다.

 

버틀러가 거대한 대양을 건널 수 있도록 지도해준 벨리칙 감독과 패트리어츠 코치진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그 이전에 버틀러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더라면 버틀러는 대양을 건널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다. 타고난 자질과 본인의 피나는 노력, 그리고 훌륭한 스승은 파파이스에서 치킨을 굽는 인생을 미국이 열광하는 스포츠 영웅으로 바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