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은 비주류의 힘: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1962)>
봄은 왔는데 침묵만이 감돌았다. 울새, 비둘기, 여치, 굴뚝새, 또 다른 수많은 새들의 울음소리와 더불어 새벽이 밝아오곤 했는데 이제는 죽음의 정적만이 저 들판과 숲과 늪위에 깔려 있을 뿐이었다....... 미국의 수 없이 넓은 땅에 약동하는 봄의 소리를 침묵시킨 것은 무엇일까?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서문 중)
49년 전 1962년 9월에 출간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Silent Spring, 1962)>은 DDT 계열 살충제의 무분별한 사용이 생태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고발한, 그리하여 미국 환경 운동의 산파가 된 고전이다.
레이첼 카슨 이전에 환경 사상이 부재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반까지의 환경 사상은 주로 무분별한 개발에 훼손되는 삼림을 심미적으로 복원하거나 산림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관리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었다. 1870년대에 옐로스톤 국립공원법이, 1890년대에는 산림을 보호, 관리하기 위한 법이 차례로 제정되었다.
시에라 클럽을 비롯한 민간 환경보호 단체들도 같은 시기 결성되었다. 20세기 첫 대통령이었던 시오도어 루즈벨트가 열렬한 환경보호론자였던 덕에 1905년에는 산림청이 신설되기도 한다.
산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환경 보호론이 형성되었던 바로 그 시기, 화학산업이 발흥하고 각종 새로운 합성화학물질들이 놀라운 속도로 쏟아져나왔다. 1차 대전 시기에 이르러 거대 화학 기업들은 의약품, 위생제품, 독가스 생산을 비롯한 군수 산업으로 막대한 이윤을 챙길수 있었다.
거대해진 화학 산업은 세제, 살충제, 제초제 등의 형태로 보다 깊숙히 일반인들의 생활 속으로 다가간다. 2차 대전 시기 살충제 광고는 일종의 애국심마케팅(!)까지 끼워팔았다. 일본인들은 제거해야 할 ‘해충,’ ‘박멸의 대상,’ ‘혐오스러운 존재’ 등으로 은유되었다.
여하간 화학 제품은 애초에 더 위생적이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약속이었다. DDT도 본래는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말라리아 박멸에 크게 공헌했으며, 개발자 뮐러는 노벨 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해충들은 결국 살충제에 내성을 갖게 되어 화학적 해충 박멸을 위해서는 더 강력한 새로운 살충제를 필요로하게 되는데다가, 먹이 사슬을 통해 다른 동물들의 몸 속에 살충제 성분이 축적되면서 생태계는 교란될수 있다.
침묵의 봄도 “정부가 모기 박멸을 위해 비행기로 숲속에 DDT를 살포하고 나서 기르던 새들이 다수 죽어버렸다”는 조류학자 허친슨의 편지가 계기가 된 저술이었다. 카슨은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개발된 DDT, 엘드린, 클로르덴 등 독성물질들이 당장 눈앞의 편리와 이익만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남용될 때 재앙의 역풍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었다. 화학물질 보다는 생태계의 조절 기능을 이용해야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린 <침묵의 봄>은 거대 화학기업들과 과학자들, 정부 당국자들로부터 노골적인 무시와 비판을 받았다. 카슨이 박사학위도 없는 (카슨은 해양 동물학 석사학위 소지자였다), 학계의 비주류 게다가 여성이었기때문에 더더욱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가 “새가 울지 않는 침묵의 봄”에 분노한 것은 그녀가 과학자이면서도 생명의 아름다움에 대한 (비주류적) 감수성을 놓치지 않았던 덕분이다. 결국 대중은 그녀의 생명에 대한 감수성에 공명했다. 감수성은 카슨이 환경운동의 어머니가 되게 만든 원천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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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닷새 남짓이었지만, 요 며칠간 사람들은 “서울시장 안철수”를 상상했고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상상에 열광했다. 기존 정치인도 아니고, 출마 선언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이상한 사람이 또 서울시 망치면 분통터질 것”이라는 생각에 출마를 고려 중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온 뿐이었는데, 지지율이 50%가 넘는다는 보도까지 술렁였다. 안철수 신드롬이었다.
반전도 있었다. 안철수 교수가 (당시) 지지율 5%대의 박원순 희망제작소 이사장 의 서울시장 도전을 존중하며 아무런 조건 없이 “아름다운 양보”를 하고 퇴장했기때문이다. 정치공학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역설적이게도 안철수 교수는 이미 그 누구보다도 비중있는 정치인이 되어버렸다.
안철수 신드롬은 문화적 현상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기존 정치인들은 진보, 보수 할것 없이 정치인들은 일방적으로 당신들을 위한 비전이 여기에 있으니 알아달라고, 이해해달라고 설명하고 설득하는데 반해, 청춘 콘서트나 트위터 등에서 드러나는 안철수의 소통 방식은 “공감”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즉, 나(대중)에게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이가 이미 자기 분야에서의 탁월한 전문성을 입증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도 나처럼 구태 정치를 혐오한다…이것이 안철수 신드롬의 본질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 비주류에게 공감의 능력, 혹은 주류가 신경쓰지 않는 것에 대한 감수성은 특별한 힘이다. 이제 안철수 돌풍이라는 “현상”을 통해 드러난 정치 바깥 대중의 정치적 욕구가 정치 문화로 이식될 수 있을까. 서울시장 선거부터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