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사회에 근접했던 실험
민주당의 J.F. 케네디가 43세라는 사상 최연소 나이에 대통령에 당선되던 1960년 무렵부터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는 여전히 보수권력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던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1968년까지의 짧은 시기. 미국사 교과서들이 보통 변화의 시대, 자유주의의 질서 등의 이름으로 설명하곤하는 시대다.
1960년대 미국은 사회,문화적인 그리고 입법적인 측면에서 다소 진보적인 변화들을 목격한다. 민권운동이 절정에 달했고, 페미니즘이 성장했다. 환경운동이나 소비자운동의 씨앗도 이시기에 뿌려졌다. 민권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은 때로 법 개정으로 어느정도의 결실을 맺기도 하는데, 마이너리티에 대한 적극적 우대 및 차별 철폐 (Affirmative Action) 조항을 담은 민권법(Civil Right Act of 1964)이나 1870년 수정 헌법 15조에서 명문화한 흑인들의 투표권이 거의 한세기만에 실제 효력을 갖게 된 것도 1960년대다. 얼 워렌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원이 적법절차(due process)를 중요하게 여기는 판결들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사법적 개혁도 있었다. 각종 의로 및 사회 복지 시스템이 도입, 정착되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빈번히 그 시대의 아이콘으로 호명된다. “신개척자 (New Frontier)정신”을 기치로 내세웠던 젊고 스타일리시한 대통령 케네디다. 그가 “사회발전이 없는 경제발전은 대부분의 백성을 계속 빈곤 속에 머물게 하는 반면 극소수의 특권층만 그 이익을 얻게 한다”고, 또 “만일 자유 사회가 가난한 다수를 도울 수 없다면, 부유한 소수도 구원할 수 없다”고 연설하곤 했다. 그러니, 케네디의 이미지가 자유, 개혁, 평등과 같은 가치의 언저리에서 형성되어 온 것이 절대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이 지닌 이미지, 스타일, 수사(rhetoric)의 힘이라는 자산에 비해 개혁의 정치적 힘을 (혹은 의지를) 가졌던지는 의문이다. 그 시대의 진보를 견인할만큼의 정치력을 갖기에는, 재임기간이 너무 짧았던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개혁 입법들은 사실 케네디 행정부의 거의 막판에야 수면위로 드러난 의제였고, 각종 개혁입법과 제도 변화는 그를 승계한 린든 존슨 재임기간에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36대 린든 존슨 (Lyndon B. Johnson, 재임: 1963~1969) 대통령은 긍정적인 의미로든 부정적인 의미로든 그 전임 케네디 대통령이나 후임 닉슨 대통령보다 존재감이 약한 인물이긴하다. 하지만 집권과 동시에 케네디가 임기 말 제안했던 민권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의회를 설득했던 능력으로 보아, 탁월한 정치력이 있었던 듯 하다. 1964년에는, 민권(civil rights)을 포함하여 보다 포괄적인 일련의 국내적 사회 개혁 프로그램들을 “위대한 사회 (Great Society)”라는 이름하에 제안하고, 민주당 의회와 함께 이를 추진하게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제안했던 뉴딜 (New Deal), 트루먼 대통령의 페어 딜 (Fair Deal)의 계보를 잇는, 하지만 “가난과 인종차별”을 없애는 목적에 관한한 한층 의미있는 개혁프로그램들이었다. 64년 대통령 선거에서 존슨 대통령이 사용했던 슬로건도 바로 그 “위대한 사회”다.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에서 인종차별, 적극적 기회 보장을 위한 입법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빈곤과의 전쟁”이었다. 정부차원의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한 존슨 행정부는 경제 기회에 관한 법률 (Economic Opportunity Act of 1964)를 제정하여, 경제기회국 (OEO, Office of Economic Opportunity)를 신설했다. 이를 통해 빈곤층이 주택, 보건, 교육의 문제에 있어 기회와 발언권을 가지도록 하는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또한 이들에게 직업 훈련의 기회를 제공한다. 가령 65년의 초중등 교육 법(Elementary and Secondary Education Act of 1965)와 고등교육법 (Higher Education Act of 1965) 제정으로 시작된 교육 개혁에도 역시 주목해야한다. 무엇보다 중앙 정부 재원이 교육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터부를 없앴다. 교육 지수법안을 통해 초, 중등 각 학교에 저소득 가정 학생 수에 따른 보조금을 지급했다. 또한 대학생들이 낮은 금리의 등록금 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인 헤드 스타트 (Head Start) 등을 통해 저소득층의 교육 기회 확대를 꾀했다. 오늘날의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은 이때 그 골자가 만들어졌다.
뉴딜과 페어 딜 프로그램이 완성하지 못했던 의료 개혁도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을 통해 추진된다. 먼저 65세 이상 노인의 의료비용을 보조하는 메디케어(Medicare)와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 혜택인 메디케이드(Madicaid)가 처음으로 제도화되었다. 현재의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역시 60년대에 만들어진 그것을 토대로 하고 있다.
오바마의 혹은 그 이전의 의료 보험 개혁안을 놓고도 사회주의적이네 어쩌네 하는 미국이고보면, 60년대 중반 존슨 행정부가 단행했던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은 파격이었다. 빈곤 퇴치에 있어서는 65년에서 68년 사이에 어느정도의 효과도 있었다.
여기까지 읽었을때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임기 막바지 존슨 행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왜 였을까? 과장 조금 섞자면, 그게, 다, 전쟁때문이었다. 일단 밖으로 전쟁을 치르면서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에 동원할 충분한 재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고, 고조되는 반전 여론도 린든 존슨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는 않았던 탓이다. 돌이켜보면, 위대한 사회에 근접하다 끝난 린든 존슨의 비극이다.